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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환규 Jan 22. 2024

사이비 지식은 조직을 위험에 빠뜨린다

몇 달 전 지방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25년 차 한의사라는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자신이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 고객의 MBTI 성격유형에 따라 가장 잘 듣는 한약 처방이 가능한 정도까지 연구가 진행되었고, MBTI 검사가 진맥보다 더 정확하다는 내용이었다. 한의사와 비슷한 시기에 MBTI 강사 교육을 받은 필자는 한의사의 문자를 읽으면서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사의 주장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검증을 거쳤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검증되었다고 주장하거나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도 없으면서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유사 과학자 혹은 사이비 과학자라고 한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유사 과학 사례가 ‘혈액형 성격설’이다. 일본에서 1927년 이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이 출간되면서 시작된 혈액형 성격설의 열풍은 1993년부터 식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일본의 열풍을 이어받는 나라가 나타났으니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영어 위키백과에서 혈액형 성격설을 검색하면 ‘혈액형 성격설은 일본과 한국에 퍼져있는 유사 과학적 믿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일상에서 유사 과학 전파자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선시대 최고의 의서인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 의관인 허준 선생이 저술한 의서이다. 이 책은 선조 임금의 지시에 따라 임진왜란 중인 1596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1610년 광해군 때 완성한 조선 최고의 의학서적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다친 사람이 많았고, 전염병도 만연하면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자 선조 임금은 당시 최고 의사였던 허준에게 의원과 약재가 부족한 현실을 고려해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백과사전 형식의 의학서적을 편찬하게 했다. 이에 따라 허준 선생이 중국과 조선의 여러 의서를 연구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의서를 만들어 낸 것이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에는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잘못된 내용들이 있다. 5백 년 전의 서양의학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황당한 내용이 담겨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동의보감과 다른 점은 5백 년 전의 이론을 특정 목적의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전문가나 일반인 중에는 식자재나 약초의 효능에 대해 현대 과학 기술로 검증한 결과가 아닌 오백 년 전의 동의보감을 근거로 한다. 이런 사람은 사이비 지식을 마치 최신 지식인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사이비 지식은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MBTI의 특정 유형을 채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회사가 있다는 말이 온라인 공간에서 떠돌고 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놓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사이비 지식은 암세포처럼 퍼져 업무나 일상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이비 의학을 믿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고, 잘못된 정보로 큰 손해를 입은 회사나 개인의 사례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이비 지식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 중에는 편하게 일하거나 쉽게 정보를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이지 지식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식이나 정보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동의보감에 대해 최신 과학을 바탕으로 한 검증 결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았다면 자기 이익을 위해 동의보감을 들먹이는 사이비 지식인은 진작 사라졌을 것이다. 혈액형 성격설도 만들어진 배경이나 내용을 확인했다면 지금처럼 유행하지 못했다. 결국 사이비 지식의 생명력은 검증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조직원은 정확한 데이터와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직원 중에는 사이비 지식인처럼 근거도 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궁예의 관심법처럼 고객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주장의 근거를 요구하면 직급으로 누르거나, 엉터리 근거로 근거를 요구하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사이비 지식인이 많을수록 그 조직은 경쟁사와의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크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사결정은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객관성이 부족한 의견이나 주변 사람들의 주관적인 의견을 업무에 적용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원은 사이비 지식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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