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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환규 Sep 02. 2024

상대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고속도로를 운행하는 좌석버스에서 입석이 허용될 때의 일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는 좌석버스 뒷자리는 시끄럽고 내리기도 불편해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아 가끔 옆자리가 비면 가방을 그 자리에 놓고 편하게 갈 수 있어 뒷자리에 타곤 한다.      


그날도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서 계속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면서 자리가 거의 찼는데, 고속도로 진입 전 마지막 정류장을 앞두고 버스 뒤쪽 두 자리만 빈 좌석으로 남았다. 마지막 정류장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차에 올랐다. 맨 처음 학생 세 명이 탔는데, 뒤쪽에 있는 빈자리에 한 명이 앉았다. 나머지 두 명은 제일 뒤의 비어있는 자리에 앉지 않고 자리에 앉은 친구 옆에 섰다. 이 학생들 뒤로 다섯 명 정도가 더 올라탔지만 서있는 학생들로 인해 뒤의 빈자리까지 오지 못했다.      


빈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빈자리에 누가 앉을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서 있는 학생들은 가끔 빈자리를 쳐다볼 뿐 앉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학생들 근처에 서 있는 사람들도 비어있는 자리를 쳐다보기만 할 뿐 학생들처럼 앉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아마도 ‘저 학생들이 먼저 탔으니 저 자리는 학생들 것이다’라고 여겼거나 ‘학생을 밀치고 들어갈 용기가 없어서’ 앉으려는 시도를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도 빈자리에 앉지 않았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학생들이다. 친구들과 떨어져 뒷자리에 앉기보다는 서서 가더라도 친구끼리 대화하면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아쉬웠던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빈자리에 앉지 않고 친구들과 서서 가겠다고 결심했다면 서있는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서서 가는 사람 중에는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다면 빈자리를 두고도 앉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서서 가는 사람들이다. 약 20분 이상을 이들의 행동을 지켜본 바로는 누구도 학생들에게 “자리에 앉을 건가요?”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만약 서서 가는 사람 중 누군가가 용기를 내 학생들에게 “내가 앉아도 될까?”라고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학생들은 “네, 그렇게 하세요.”라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에서 소통의 부재로 서로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화 방법의 부족으로 소통이 안 되는 일도 있지만 ‘상대의 의도를 추측’하면서 ‘미리 포기’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버스에서의 사례처럼 ‘쟤네들이 앉겠지’라고 추측하거나 ‘내가 앉고 싶다고 말했다가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라고 지레짐작하면서 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런 경우는 직장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런 부탁을 하면 거절할 거야’, ‘이런 말은 상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혹은 ‘상사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할 거야’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지만, 추측의 결과는 좌절뿐이다.     


직장에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 교육의 주요 내용은 ‘소통 방법’에 대한 것인데, 앞의 사례의 경우는 아무리 방법에 대해 많은 시간을 교육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소통을 위해서는 ‘스킬’보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상상해 보자.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때 많은 사람은 즐거워한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잔소리를 ‘자신에 대한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할머니의 따뜻한 정’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기에 할머니의 야단이 불쾌하기는커녕 즐겁기만 하다. 오히려 야단을 치지 않으면 ‘할머니가 나에게 섭섭한 것이 있나?’라고 서운해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이 욕쟁이 할머니의 말에 정을 느끼는 이유는 할머니의 소통 방법이 세련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할머니의 거친 말과는 달리 음식에 들어있는 할머니의 진짜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기에 사람들은 할머니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처지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태도가 소통을 어렵게 하는 ‘추측’을 낳게 되고 ‘상대에 대한 비난’과 연결된다. 상사가 부하에게 업무를 지시한 다음 부하의 결과물이 자신의 바람에 미치지 못하면 부하를 비난한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혹은 “이것도 보고서라고 가져온 거야? 초등학생이 써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와 같은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부하를 비난하더라도 결과물이 좋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부하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부하가 상사에게 반감을 갖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잠깐의 멈춤이 필요하다. 상사의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부하에게 말을 할수록 거친 말이 나오게 된다. 말하는 대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런 결과를 만든 원인이 무엇일까?’라고 스스로 질문할 필요가 있다. 질문을 하면서 ‘혹시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자신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문제의 원인을 부하로부터 찾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하면 다양한 원인이 나올 수 있다. ‘부하의 노력이 부족했다.’, ‘부하의 보고서 작성 능력이 부족하다.’ 혹은 ‘상사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았다’ 등과 같은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알았다면 해결방법을 찾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부하의 능력이 부족하면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되고, 상사의 지시가 명확하지 않았다면 명확하게 하도록 말하면 된다.     


이처럼 상대와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가 부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사이에 불통이 되는 이유는 상사나 부하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한 버스의 경우를 보자. 만약 학생 중 한 명이 ‘우리가 이렇게 있어 뒤에 사람이 자리에 앉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 뒷사람에게 “저희 대신 앉으세요.”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비어있는 자리만 바라보면서 눈치를 보던 사람이 학생들에게 “내가 저 자리에 앉아도 될까?”라는 말을 했다면 아마도 자리에 앉아 편하게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럴 때는 아주 정중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앉지 않으면서 남도 못 앉게 하는 놀부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하면 말이 거칠어진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대화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갈등의 원인을 ‘성격 차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갈등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세상에 성격이 같은 사람이 없는데 갈등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궁핍한 답을 한다. 

    

갈등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사와 부하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상사와 부하는 결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상사와 부하는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소중한 사람에게 비난하는 것이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상사는 욕쟁이 할머니와 같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비록 부하에게 말을 거칠게 하더라도 부하의 성장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마음은 상사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부하에게 온전하게 전해진다. 이렇게 전해지는 따뜻함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상대의 마음에 전달되기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익히려는 노력에 앞서 상대를 아끼는 마음을 갖는 태도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전제되어야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효과가 완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상사뿐만 아니라 부하 또한 큰 노력이 필요하다. 욕쟁이 할머니와 손님 사이의 관계는 할머니의 노력만이 아니라 손님의 노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다. 할머니가 손님에게 따뜻한 마음이 담긴 욕을 했을 때 손님이 할머니의 말을 할머니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손님이 할머니의 뜻을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부하는 상사를 ‘욕쟁이 할머니’와 같은 사람으로 봐야 한다. 상사가 자신을 향해 싫은 소리를 할 때 속으로 ‘나를 믿고 이런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생각 대신 ‘또 잔소리네. 정말 지겹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사는 적으로 인식되면서 적대적인 말이나 행동이 나오게 된다. 

    

대화에는 상대가 항상 존재한다. 상대와 제대로 된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 필요가 있다. ‘마음을 연다’라는 의미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상대와 대화하게 되면 상대는 편안하고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의 대화는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만든다. 자신의 진심이 담긴 말을 주고받을 때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상대와의 대화에서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버스의 경우처럼 서있는 사람이 부탁할 때 거절당할 수도 있다. 상대에게 부탁할 때 자신에게 미치는 손해보다 부탁이 수용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 자리에 앉고 싶다고 부탁했을 때 거절당하면 무안함이야 있겠지만 상대가 “그렇게 하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30분 정도를 편안하게 앉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거절에 따른 손해보다 승낙에 대한 이익이 훨씬 크다. 그러므로 두려움으로 주저하기보다는 용기 내어 솔직히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상대의 마음은 몇십 겹의 문으로 잠겨있는 성과 같다.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을 열 필요가 있으며, 이는 대화로만 가능하다. 급하다고 문을 부수게 되면 마음속에 상처가 남게 되고, 영원히 문을 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인내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저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열릴 때까지 노력하게 되면 그 문은 언젠가는 열린다는 확신을 두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때 얻게 되는 열매는 그동안의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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