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당에서 경험한 일이다. 점심시간에 약 20명 정도 되는 단체 손님이 앉아서 식사하고 있었다. 일행과 식사하던 중 앞에 있던 단체 손님 쪽에서 어떤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말을 듣게 되었다. 호기심에 그쪽 테이블을 쳐다봤더니 말하는 사람 주위에 있던 사람들만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나머지 사람들은 식사하기에 바빴다.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째, 그 모임의 성격을 보면 회의를 하고 난 다음 식사를 하는 것이 분명한데 일반인들도 함께하는 식당에서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다시 말하는 의도가 궁금했다. 둘째, 자신이 하는 말을 함께 식사하는 사람 모두가 듣고 있다고 믿는지가 궁금했다.
식당에서의 이런 모습은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에서 ‘회의’는 ‘여럿이 모여 의논함’으로, ‘회식’은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직장인 대부분은 회식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회의와 회식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회의와 회식을 구분하기 싫어하거나 구분을 못 하는 리더가 있다. 업무와 관련된 대화는 직장 내에서도 충분하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회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조직원은 회식 자체를 거부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회식할 때는 리더와 가장 먼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조직원이 리더를 피하는 이런 상황이라면 회식을 통해 리더가 얻은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
조직의 일부 부서장이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에는 직장인의 소득 수준이 낮아 외식 자체가 어려웠다. 직장에서 회식하는 날에는 평소 먹기 어려웠던 고기나 회를 먹을 수 있어 회식을 기다리던 사람도 많았다. 조직의 리더는 비싼 음식을 사주면서 조직원에게 생색을 냈고, 조직원은 조직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도 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비싼 음식이 조직원에게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퇴근 후의 삶을 중요시하는 조직원의 성향 변화에 맞춰 조직원을 대하는 리더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무시하고 리더가 직장 밖에서까지 꼰대 짓을 하려고 하면 리더와 조직원 사이에는 관계의 금이 생기게 된다. 리더로서는 조직원의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조직 운영 방침을 조직원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리더가 조직원의 신뢰를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직원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회의에서 조직원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방법은 리더가 사회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리더는 조직원이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말하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회의 막바지에 조직원과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회의를 마무리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조직원은 리더의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계획에 더욱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
회식도 회의와 마찬가지로 조직원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리더는 회식에서 업무와 관련된 발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자기 몫의 일은 제대로 못 하면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 얄미운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때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하는 순간 회식의 가치는 없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밥심으로 일한다’라는 말이 있다. 조직원이 일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점심은 주된 에너지원이다. 리더가 점심시간을 회의 시간으로 만들면 조직원은 오후에 사용할 에너지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리더는 조직원이 점심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밥 먹을 기회를 주자. 아마도 조직원은 리더로부터 따뜻한 밥의 온기를 느끼면서 리더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