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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술을 금지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by 최환규


필자가 저녁에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지 않은 것이 2년 이상 된 것 같다.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회식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전부터 저녁에 술자리를 갖는 횟수가 1달에 1~2번 정도여서 거의 술을 먹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술을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6~7년 동안 필자로서는 날마다 알코올과의 전쟁이었다. 회사 전체가 일이 아니라 술과 대결하는 분위기였다. 동료끼리 술을 마시면서 소주 회사를 인수해도 자체 소비만 해도 현상 유지는 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자주 했었다. 이런 상황은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했다.


우리나라 정상의 전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해외법인장 후보자를 대상으로 갈등 교육을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조별 활동 과제로 조직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해결 방법을 논의한 다음 발표하라고 했는데, 모든 조에서 ‘회식하면서 대화를 한다’라고 적었다. 이와 비슷한 결과는 다른 기업에서도 자주 경험했기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교육생들에게 만약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라로 가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집으로 데려와서 술을 마시겠다.”라는 대답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이처럼 일부 직장인에게 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적의 한 잔’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직장인에게 술이 금지된다면 아마도 엄청난 반발과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코로나19로 회식이 강제로 금지되면서 회식에 관한 조직문화가 변한 회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회식 금지가 풀린다는 소식에 직장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회식이라는 신문 기사처럼 회식을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부서장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직장 경력과 상관없이 회식에 특화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보노라면 회식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낮에는 그저 그런 능력을 보이지만 밤만 되면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특출한 능력을 발휘한다. 일부 부서장은 이들의 이런 모습에 팬이 되기도 한다. 온종일 이 사람을 끼고돌면서 밤 문화의 에피소드를 공유하기도 한다. 부서원들은 이 사람과 부서장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불안해한다.


부서원이 불안감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평가에 관한 공정성 훼손 가능성이다. 부서장이 밤 문화에 특화된 부서원에 의존하는 순간 부서장은 이 부서원에게 보상해 주고 싶고, 보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두 사람이 불법이나 부도덕한 행위를 함께 하는 순간 공범이 되면서 둘은 운명공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인해 부서장이 부서원에게 약점을 잡혀 부서원에게 협박당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부서장과의 유착 관계는 평가에 관한 공정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회식을 선호하는 부서장은 회식으로 인한 몇 가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첫째, 부서원으로부터 따돌림당할 가능성이 크다. 회식이 잦을수록 부서원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회식에 자기 시간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부서장이 부서원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한 회식이라는 해석은 부서장에게만 해당한다. 회식이 잦을수록 회식에 빠지는 부서원도 늘어나고, 부서장의 이런 행태에 불만을 느낀 능력 있는 부서원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도 한다. 이처럼 회식은 부서장 스스로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다.


둘째, 정보의 왜곡 혹은 불균형이 일어난다. 회식하는 동안 업무에 관한 것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이때 부서장은 회식에 참석한 사람들로부터 의견을 듣는다.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말하기 때문에 일부 정보는 왜곡된 채 부서장에게 전달된다. 또한 부서장은 부서나 회사에 관한 정보를 말하면 회식에 참석한 사람은 미리 정보를 알게 된다. 어떤 경우 부서장이 회식에 참여하지 않은 부서원에게 자신을 대신해 정보를 제공하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부서장의 말을 들은 사람은 자기 기억에 남는 말이나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부서장의 말을 직접 듣지 못한 사람은 온전한 정보를 듣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부서장은 부서장의 자격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회식은 사적인 시간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자리에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일부 참석자에게만 전달하는 것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회의실에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셋째, 패거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언론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연예인에 대해 ‘○○사단’ 혹은 ‘□□라인’이라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그 사단이나 라인에 속하는 구성원의 유대감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외부인이 그 집단에 속하기란 매우 어렵다. 특히, 승진이나 배역 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면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끼리끼리 다 해 먹는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에서 이너서클은 종양과 같아 빨리 도려낼수록 조직에 도움이 된다.


넷째, 회식은 사건 사고의 원인이다. 직장인에게 가장 큰 리스크 중의 하나는 성희롱이다. 필자는 여러 사람이 성희롱으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목격했다. 술이 들어가는 양이 늘어갈수록 평소 버릇이나 생각이 여과 없이 드러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럴 때 동료에 대한 평소 가졌던 생각을 가감 없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면서 성희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회식이 잦을수록 사고 발생 가능성도 커진다. 음주 운전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주변 사람과 시비가 붙어 사람을 폭행하거나 당하기도 하고, 강도로부터 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결국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섯째, 회식 다음 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알코올 분해에 시간이 필요하므로 회식 다음 날은 정상적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 회식에서 회사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인 결과라도 얻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회사 비용으로 먹은 술로 인해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중으로 회삿돈을 쓴 것이 된다.

부서장이 부서장의 권한을 회사로부터 위임받은 내용과 시간은 ‘업무에 관련한 근무 시간 내’에 한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근무 시간에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근무가 끝난 다음 갖은 회식 시간은 부서장 권한 남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술이 있어야 대화가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 중에는 회사를 위해 건강을 망치면서 술을 마신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실제로 간이 망가져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문제는 회사를 위해 술 마시라고 강요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혼자서 회사에 충성한다고 술을 마시고, 혼자 지쳐 쓰러진 것이다. 이런 충성은 회사, 개인 그리고 가족 등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업무에 관한 대화는 근무 시간에 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회식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술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메우겠다는 생각은 스스로 부서장으로서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부하에게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 부하는 부서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얼마 전 법무부 장관이 신임 검사들에게 검사는 ‘말하는 능력’과 ‘글 쓰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능력은 신임 검사뿐만 아니라 직장인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직장인은 일하는 과정에서 자기 생각을 상사와 동료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런 작업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생략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부서장도 이런 본능에서 예외는 아니다.


아이가 부모를 닮는 것처럼 부서원은 부서장의 행동을 보고 익힌다. 부서장이 술로 부서원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부서원의 기억 속에는 술 대신 다른 수단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로 인해 다음 부서장도 역시나 술을 선택하면서 조직문화는 ‘술 문화’가 되면서 조직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실업자로 전락해 술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수 있다.


이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익혀야 한다. 직장인은 퇴직 후에도 최소 30년 이상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때 가장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데 젊었을 때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은퇴 후 가족과 편안하게 대화하기가 힘들다. 결국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퇴직 후를 걱정하면서 재테크에만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술이 없는 대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술은 술일뿐이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술은 절대로 나를 구해줄 수 없다. 따라서 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상사, 동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금부터라도 노력하자. 아마도 노력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술 없이 하는 대화도 편해지면서 동료와 가족과의 관계도 한결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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