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에는 두 가지 종류의 퇴직이 있다. 이직을 위한 퇴직은 회사 이름과 하는 일 그리고 역할 정도에만 변화가 있다. 하지만 정년 근처에 하는 조기 퇴직이나 정년퇴직 같은 경우에는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온다.
지금 각자 명함을 꺼내보세요. 먼저 회사 이름을 지우고, 다음에 부서 그리고 직위를 지워보세요. 메일 주소와 팩스 번호 그리고 전화번호가 회사 소유라면 전화번호도 지우면 됩니다. 이렇게 한 다음 남는 것이 순수한 자기 것입니다. 아마도 남는 것은 이름과 휴대폰 번호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퇴직을 하고 나면 많은 것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로지 자기 이름만 가지고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퇴직은 많은 것을 버리는 과정이다. 이로 인한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정체성의 변화
퇴직은 가장 먼저 정체성의 변화를 가져온다. 명함에 적혀있는 직장명은 자신이 그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지만, 퇴직하는 순간 □□직장 최환규에서 자연인 최환규가 되는 정체성의 변화가 일어난다.
정체성의 변화는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먼저 자아 감각의 상실이다. 직업이 개인의 정체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사람일수록 퇴직 후 자신에 대한 인식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즉, 유명기업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퇴직 후 상실감이 커지면서 퇴직 후 삶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박약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는 ‘불충분하거나 모자란 데가 있다’라는 뜻이 있는데 의지가 부족한 사람은 의지박약으로 부르면서 그 사람을 질책하기도 한다. 사회나 직장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생활 박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단어는 필자가 만든 것으로 퇴직 후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부하나 거래처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실무를 담당했던 때는 상당히 오래전일 것이다. 그런데 퇴직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대신해 일할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해결해야 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나 부족하기 때문에 혼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무능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신에게 실망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2. 목표 및 방향성의 상실
만약 여러분을 아무런 정보도 없는 관광지에 데려간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우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도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체계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퇴직 후의 삶은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이다. 오랫동안 익숙한 곳을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여행하던 사람이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퇴직이다.
많은 사람은 퇴직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직장에서의 역할이 사라지는 순간 정체성의 변화로 인해 자신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목표 및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무기력을 느낄 수 있고, 퇴직 후의 삶에 대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3. 경제적인 변화
직장인은 일한 대가로 매월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퇴직을 하는 순간 일의 대가인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설사 재취업 등을 통해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전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기는 쉽지 않다.
퇴직 후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연금이나 저금을 아무리 착실하게 준비했더라도 직장에 다닐 때만큼의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녀가 모두 커 더는 뒷바라지가 필요하지 않다면 소득 감소에 따른 영향이 적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히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소득의 감소는 가용 자원의 감소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사회 활동도 위축될 수 있고, 가족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 생활 패턴의 변화
퇴직 후 가장 큰 변화는 출퇴근이 사라지는 것이다. 출퇴근이 사라지면서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정해진 루틴이 사라지게 되면서 자유로운 시간이 늘어난다. 여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 취미 활동이나 봉사활동과 같이 건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음주와 같이 건강을 해치는 시간 또한 늘어날 수 있다.
이와 함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또한 자연히 늘어난다. 평소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했다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함께 하는 시간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5. 건강 문제
직장인에서 자연인으로의 정체성 변화는 신체와 정신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퇴직 전에는 출근을 위해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퇴직 후에는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적어지기 때문에 신체 활동도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신체 건강도 나빠지고, 이것은 퇴직자가 흔히 경험하는 우울증이나 불안감은 정신 건강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퇴직 후의 적응 과정에서 적응 정도에 따라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회사에서의 직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런 사람들이 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6. 사회적 관계의 변화
직장인이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은 업무로 인해 만난 사람이다.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는 퇴직하는 순간 대부분 종료된다. 업무로 만나 평소 형,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관계도 퇴직하는 순간 친한 관계에서 대부분 남남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퇴직은 사회적 관계 폭을 줄이게 만든다. 이런 결과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을 느끼게 만들면서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7. 새로운 정체성 탐색의 시작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영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 1막이 퇴직 전의 삶이었다면 퇴직은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할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퇴직 후에 새로운 취미나 활동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럴 때 어떤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 직장 생활했던 기간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면 인생 1막도 가치가 있었던 시간으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생 전체가 헛된 시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퇴직 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퇴직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이미 퇴직한 사람은 퇴직 후 새로운 취미나 활동 등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와 기회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