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본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어 일본과 과거 문제로 시비가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곳이기에 아이의 역사 공부도 겸할 목적으로 갔다. 야스쿠니 신사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차에 방문객들이 기도문을 적어 보관하는 곳을 우연히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작은 나무 부적에 원하는 기도문을 적은 다음 줄에 매달아 두는 곳이었다. 호기심에 기도문을 읽다 보니 놀랍게도 우리말로 적은 기도문도 읽게 되었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글이라 놀랐다. 황당함을 느끼면서 다른 곳도 살펴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이 한글로 기도문을 적도 있었다.
한글로 적은 기도 내용은 평소 사람들이 하는 내용과 같았다. 취업, 가족 건강 그리고 대학 합격 등이었다. 이런 글을 보면서 ‘일본 귀신들은 바쁘겠다. 한글도 공부해야 해서…’라고 생각하면서 신사를 나왔지만, 쓸쓸한 기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일본 귀신에게까지 기도의 대상이 되는 수능이나 취업 등은 대상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수능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특히, 스트레스의 원인을 이해하고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보다는 술을 마시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수험생은 이미 학업 부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성적에 대한 압박, 또래 경쟁 등으로 인해 높은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다. 공부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큰데 여기에 부모와의 갈등이라는 추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더해지면 멘털 관리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상태는 이미 물이 가득 찬 컵에 물을 더 붓는 것과 같아 감정의 댐이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부모 역시 자녀의 성공에 대한 기대, 교육비 부담, 자녀의 힘든 모습을 보는 안타까움, 사회적 시선 등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자녀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때로는 과도한 간섭이나 압박으로 변하면서 자녀와의 관계를 해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면서 스트레스의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전염병처럼 부모의 스트레스가 자녀에게, 자녀의 스트레스가 부모에게 옮겨지면서 스트레스의 강도가 더욱더 높아지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부모의 불안한 표정, 예민한 말투, 깊은 한숨 등은 직접적인 잔소리 없이도 자녀에게 부모의 불안감을 그대로 전염시킨다. 수험생은 부모의 걱정을 느끼며 자신의 어깨에 무언의 압박감이 더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아침에 수험생에게 굳은 표정으로 “학교 잘 다녀와”라는 인사말을 건넬 때 자녀는 ‘부모님이 나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구나’라는 부담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수험생이 학업 부진으로 침울해하거나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이면 부모는 자녀의 좌절감이나 불안감에 공감하며 함께 힘들어하게 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수능 성적에 직접 미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학습과 관련이 있는 뇌의 기능을 떨어뜨려 수험생의 집중력, 기억력, 문제 해결 능력에 직접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은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고, 실제로 학업 성과가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수험생이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질수록 수험생은 무기력, 불면증, 식욕 부진 등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수능 시험날의 몸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실력 발휘를 막는 원인이 된다. 심한 경우 우울증 등으로 인해 수험생활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부모는 모두 스트레스에 대한 높인 이해와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수험생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부모는 먼저 자신의 스트레스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신의 불안감이 자녀에게 옮겨지지 않도록 부모 스스로 기도, 운동, 취미활동, 명상, 대화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모의 평상심이 자녀에게 안정감을 준다. 또한, 자신과 자녀를 분리해야 한다. 자녀의 성적이나 결과가 곧 자신의 인생 성패라고 여기는 태도를 버리고 자녀는 독립적인 개체임을 인지해야 한다.
둘째, 정서적 지지와 편안한 환경 조성이다. 사소한 잔소리도 자녀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원인이다.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하고, 자녀를 믿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부모로서는 아이에게 조언하고 싶은 충동이 일 수 있지만, 이런 유혹을 참고 견뎌야 한다. “다들 겪는 일이야” 혹은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와 같은 말을 할수록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축소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감정이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외로움과 불안을 더 크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편안한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자녀가 짧은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준다. 자녀의 재충전 기회는 학습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면은 수험생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기본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노력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서로에게 감사 표현하기’이다. 힘든 상황일수록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의 노력에, 자녀는 부모의 지지에 감사를 표현함으로써 가족 간의 유대감과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부모와 수험생은 모두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서로를 이해하며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 비로소 원하는 결과와 건강한 관계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