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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謝過)에는 때와 방법이 있다

by 최환규

몇 년 전 금년 11월에 실시된 수능시험을 본 학생의 사연이 실린 신문 기사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4 수생인 학생이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보던 중 자신의 옆자리에 있던 교탁에서 “드드득”하는 휴대폰 소리가 몇 차례 반복해서 들려 시험에 집중할 수 없어 시험을 망쳤다. 그래서 감독관에게 항의를 하자 “자신의 핸드폰이 아니라 다른 학생의 휴대폰에서 난 소리다”라고 변명을 했고, 수험생의 계속된 항의 끝에 감독관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휴대폰이라고 스스로 밝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수험생은 너무 억울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11월 말 마포대교에서 자살하겠다는 내용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감독관의 문제 있는 태도가 수험생을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결과가 되었다.


수험생이 억울해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시험을 망친 것에 대한 속상함이다. 4 수생인 수험생은 이번 시험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감독관의 사소한 행동 하나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험생을 화나게 만든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의하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다.

감독관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문제가 이렇게까지 확대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 순간 무척 당황해 발뺌부터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낙비는 피하고 보자’라는 심정에서 ‘일단 부인하다 안 되면 사과하면 되지 뭐’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이런 ‘버티고 보자’라는 태도는 문제 해결에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다. 나의 실수로 인해 상대방이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물질적 손해’이다. 앞의 사례에서 나온 수험생의 경우 ‘점수’를 잃었는데, 점수를 얻기 위해 쏟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 또한 손해를 본 것이다. 또 다른 손해는 ‘심리적 손해’이다.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으로부터 ‘인정’ 받지 못해 발생한 억울함은 분노를 느끼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분노를 느끼면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상대방을 ‘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적’은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상대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물리쳐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억울함이 클수록 거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법은 ‘즉시 사과’하는 것이다. 사과를 하더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효과는 급속도로 떨어진다. 또한 마지못해 하는 사과 또한 효과가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바로 상대방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럴 때일수록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되는 순간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움을 느낄 때 사람들은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뺑소니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피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게 증폭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용기를 내어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과를 할 때는 그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야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 저 사람이 미안해하고 있구나’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마음까지 알아주면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덧붙일 때 사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 사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사과를 했지만,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화를 내거나 따지는 경우엔 ‘아, 저 사람이 정말 억울했구나’ 혹은 ‘화가 많이 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대방과의 대화를 지속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끔 사과를 했는데 상대방이 계속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과할 일이 하나 더 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직장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부하가 상사에게 사과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사도 부하에게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만, 상사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이런 경우 부하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상사의 뒷담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게 된다.


사과는 단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도이다. 사과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가 사람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연료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사과를 좀 더 편안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수한 일이 있다면 그 순간 먼저 사과하는 용기를 내어보자. 훨씬 편안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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