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대해

10년 키운 고양이를 떠나보내며

by 김태윤

이별의 가장 슬픈 점은, 누군가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삶을 마치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점이 나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동안 함께했던 순간들은 뭐가 될까. 내가 너에게 쓴 시간들은 모두 무의미할까. 이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초롱이를 데려오던 날이 생생하다. 아빠 차에 타서, 빨래바구니 하나를 들고 고양이를 데려왔다. 그날이 2015년 8월 2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5년 4월 5일이 되었고, 초롱이는 우리 가족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 때문이었다.

초롱이가 죽고 나서 10분 동안은 슬프지 않았다.

사실,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현실이 현실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아이를 쓰다듬을 수 없겠구나, 같이 자자고 초롱이를 부르면 아무도 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들.

눈물이 많이 났다. 커다란 구멍이 마음속에 생겼다.


초롱이가 죽어도 시간은 흐른다. 구멍은 점차 메꿔져 간다. 이 점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네가 만든 구멍은 이렇게 쉽게 메꿔지는구나, 나에게 넌 뭐였을까.

어쩌면 초롱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공허가 비워지다니.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조각들이다.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도 성숙해지는 과정의 일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지만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금은 7월 6일이다.

초롱이가 죽은 지 3달이 되어간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는 이런 날짜를 세는 것도 그만두겠지, 그리고 너를 잊어가겠지.

이 점이 나를 더 슬프게 한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아직 초롱이를 잊지 않았다는 뜻이고,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뜻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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