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나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졸업식을 준비하며 바쁘게 지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증명사진도 찍고, 성인이 된 만큼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어 매일 묶고 다니던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
졸업식 일주일 전, 할머니가 자주 다니시던 미용실에 갔다.
“머리카락이 워낙 길어서 자르려면 목이 아프겠다.”
미용실 아주머니의 말에 긴장이 됐다. 단 한 번도 자른 적 없던 머리였기에, 가위 소리 하나하나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단발머리가 완성됐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어색하기만 했다. 숱 많은 앞머리와 곱슬기가 더해져 마치 응답하라 1988 속 유행하던 스타일처럼 되어 버렸다. 나 스스로도 웃기고, 또 속상했다. 졸업식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집에 돌아오자 가족들도 놀랐다. 평생 단발머리를 해본 적 없으니 당황할 만했다. 나도 후회가 컸다. 왜 굳이 동네 미용실에서 잘랐을까, 왜 졸업식 전에 했을까. 결국 졸업식 날 회색 코트에 집에서 가장 멀쩡한 옷을 입고 참석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전교생 앞에서 상까지 받았으니 창피함은 배가 됐다. 특히 남동생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내게는 참 잊지 못할 졸업식이었다.
졸업 후, 나는 간호사를 희망했지만 담임 선생님 권유로 임상병리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어떤 일을 하는 전공인지 잘 몰랐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길이라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나는 대학생활도 혼자가 될까 두려웠지만, 입학 전 단체 채팅방에서 몇몇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집과 먼 학교라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살면서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봤던 나는, 아빠의 도움으로 3년간 기숙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술주정 부리는 아빠와 떨어져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첫 대학 수업을 듣던 날, 드디어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여전히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해 연애 경험은 없었지만, 작은 도전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유행하던 라디오 방송 앱을 설치해 방송을 시도했다. 기숙사가 2인실이라 혼자 방송하기는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들의 방송을 듣고 대화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울하거나 무기력한 생각이 줄어들었다.
성인이 된 후 교회 생활은 잠시 멀어졌다. 길거리에서 받은 전단지에 이끌려 낯선 종교 모임에 넘어갈 뻔한 경험도 있었다. 그 일을 겪은 후부터는 전단지를 받아도 곧장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신 대학 1학년 때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하며 다시 교회를 찾게 되었다.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이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첫 성인 생활은 두려움 속에서도 조금씩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