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은 두렵고 낯설었지만, 조금씩 적응해 나가며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첫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나는 기숙사에 있던 짐을 모두 택배로 시골집에 보내고, 다시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자취를 할 수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기숙사는 한 학기 등록금만 내면 되지만, 자취는 월세와 식비까지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 동안만이라도 집에 있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편한 선택이었다.
여름방학의 하루하루는 중학교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안일과 밭일, 바닷일을 하시는 할머니를 도왔고, 삼촌이 잡아 오신 장어나 동생이 잡아 온 숭어를 함께 손질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할아버지를 간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여름, 나는 처음으로 아빠와 술자리를 가졌다.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가서 술과 안주를 고르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술 마실 줄은 아냐?”
아빠가 묻자, 나는 “맥주 정도는 마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1.5리터짜리 테라 페트병 맥주를 집어 들었다.
그날이 내가 성인이 된 후, 아빠와 함께한 첫 술자리였다. 할머니는 여자가 술 마시는 걸 못마땅해하셨지만, 아빠의 술주정을 내가 감당하고 있었기에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드라마를 보시고 쉬셨다.
아빠와 나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옛이야기도 하고, 잔소리를 듣기도 하고, 때론 내가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술이 오가자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억울함과 힘든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아빠 역시 잎새주 두 병을 마시며 취해 있었기에, 결국 둘 다 술김에 서로 욕까지 하며 한풀이를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얼굴도 성격도 주량까지 닮아버린 부녀지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수가 적던 내가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습관까지 아빠를 빼닮은 것 같아 가끔은 소름이 끼친다. 다음 날 아침,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나는 아빠에게 꿀물을 타 드렸고, 곧장 밭에서 일하고 계신 할머니를 도우러 나갔다.
그렇게 내 여름방학은 집안일, 바닷일, 그리고 술주정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빠를 받아주며 흘러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빠의 술버릇이 조금 나아진 듯했지만, 집에 내려올 때마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자 나는 또다시 짐을 택배로 보내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며칠 동안 수업을 듣고 공부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짧아진 머리카락처럼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