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맞이한 여름은 자유롭고 설레는 계절이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여름이 지나자, 금세 가을이 찾아왔다.
먹을 음식이 많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절. 친척들과 온갖 식구들이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이었다.
나는 추석에 집을 가기 위해 예약해 둔 버스를 탔다. 저번에는 혼자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가족들에게 처음으로 그를 소개하는 날이라, 내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남자 친구는 키가 컸다. 그 당시 내 이상형은 키 크고, 성격이 착한 사람이었고, 사실 얼굴도 많이 봤지만 키가 우선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저녁에는 다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어쩐지 술기운 때문인지 가족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어떻게 만났냐?”, “왜 좋아하냐?”, “앞으로 계속 좋아해 줄 거냐?”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그 자리가 어색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하신 아빠는, 그를 보며 갑자기 마음에 안 든다며 나가라고 하셨다.
분명 전날에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늘 앞뒤가 다른 아빠였다. 결국 우리는 명절을 다 보내지도 못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남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의 집에서는 귀한 아들일 텐데, 우리 집안의 불편한 분위기만 보고 간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성격 차이로 다투기도 했고 결국은 헤어졌다. 그가 가끔 내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면, 맞는 말이었지만 아빠를 욕하는 말은 딸로서 듣기 불편했다.
사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연애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늘 서툴렀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먼저 의심부터 했다. 못생긴 나를 왜 좋아하는지, 단순히 키 작은 여자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순진해 보여서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그러면서도 조금만 잘해주면 금세 마음이 가고, 먼저 고백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금사빠였다.
나는 무엇이든 퍼주는 성격이었고,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기념일마다 A4 한 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주곤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편지는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을 지나치게 쏟아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외로움에 휩쓸리듯 새로운 사람을 만나곤 했고, 이번에도 남자 친구와 맞지 않는 점을 알면서도 놓지 못했다.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남자 친구를 만나러 시골에서 다시 올라갔다가 아빠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화가 잔뜩 담긴 목소리로 “어디냐, 당장 내려와라”라는 말에, 나는 다 큰 성인이고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 보낼거라고 거짓말도 쳐보고 싫다고 계속 그랬지만 아빠 고집에 못 이겨 결국 막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날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과 가족, 그 사이에서 나는 늘 어디쯤 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