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파편 위에 눈물

by 말 없는 나무

깜깜한 밤, 나는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 타고 엄청나게 혼날 각오를 하고 집에 들어갔다.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아빠가 왔냐며 별로 혼나진 않고 잔소리만 하였다.

‘이 추운데 친구 만나러 먼 곳까지 가냐, 집에는 들어와야 하지 않냐?’라며 아빠가 사 온 치킨을 먹으라고 하셨다. 난 너무 허무했다. 이렇게 안 혼낼 거면 그냥 남자 친구와 외박하고 내일 아침에 집에 올 걸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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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다음 날 갑자기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다. 평소에 그는 성욕이 너무 쌔서 그런지 나를 욕구대상으로만 보이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집에 간다고 하니 못 자서 그런 것 같아 보였다. 차라리 아빠 덕분에 잘 헤어진 것 같다. 나도 맘을 다 놔버린 건지 울지도 않고, 할머니와 밥을 먹었다.


1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 어느 날 아빠는 또 뭐가 그리 힘든지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술주정하면서 할머니와 나와 이야기했다. 할아버지의 욕먹어가면서 간호했던 내가 아빠는 안쓰러웠는지 항상 간호할 때마다 "왜 제 딸한테만 욕하고 뭐라 그라요"라며 나의 편이 되어주셨다.

그땐 그래도 나의 아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가족 얘기, 돈 얘기하면서 분위기는 더 악화하였다.

지금 글을 쓰면서 그 상황이 어쩌다 싸우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화가 난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아빠 머리를 때리셨고, 아빠는 그냥 그 자리에서 이성을 놓고 말았다.


그 당시 집에는 할머니와 아빠 나밖에 없었다.

아빠를 막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할머니는 근처에 사시는 삼촌 즉 아빠의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밖에 나가셨고, 나는 아빠를 안아 말렸다.

그때 아빠는 그 분노에 못 이겨 문밖으로 나가는 할머니에게 소주병을 던졌고, 다행히 할머니는 맞지 않으셨다. 나도 그 순간 이성을 잃어 아빠에게 온갖 욕을 하며 ”정신 차리라고 미친놈아 제정신이여 소주병 던지게 미친놈이네 좀 가만히 좀 있어”라며 말렸고, 시간이 지나 할머니 혼자 들어오셨고, 할머니는 방으로 피신해 문을 잠갔다.

나는 그 당시 부엌에 있었다.

우리 집은 네모 모양으로 부엌에 큰 창문이 있고, 그 앞에는 마루 그리고 마당이 있었다. 아빠는 그 불투명한 부엌 창문에 비친 내가 할머니인 줄 알았는지 아니면 그냥 이성을 놓아 그런 건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마당에 있는 큰 회색 벽돌로 부엌을 향해 던졌다. 쨍그랑 소리가 엄청 크게 났으며, 다행히 나는 맞질 않았다.


내 발 위로 유리조각들이 쏟아졌다. 그 이후 삼촌이 오게 됐고, 아빠와 몸싸움하게 되었다, 예전엔 싸움을 말리던 할머니는 오늘은 그냥 가만히 계셨다. 나도 말릴 수 없었다. 나도 아빠가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 안 말렸던 것 같다.

다들 진정한 후에야 어른끼리 마루에서 이야기했고, 나는 슬리퍼를 신고 그 유리 조각을 치우다 발가락을 베어버렸다. 피를 보자마자 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발을 절뚝이며 소쿠리에 담은 유리 조각 버리러 나가는 길에 삼촌이 나를 보고 다쳤냐며 걱정하였지만, 할머니는 "저 가시나 다친 게 뭐 어쩠는데, 지 아비랑 다 싸그리 나가버려라."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나에겐 큰 상처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치웠을 뿐인데, 다 할머니 때문에 막아주고 다치실까 봐 그런 건데... 정말 이 집에서 딸처럼 잘해왔었는데 너무하다는 생각에 유리 조각 버리러 밖에 나가면서 나는 엄청나게 울었다. 진정이 안 됐다. 길을 걷기도 해 봤지만 예전처럼 진정이 안 됐다.

나는 또 예전에 갔었던 마을회관 옥상으로 가 진정하려고 기도하고, 대성통곡하며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었다. 좀 진정이 되고 집에 들어갔고, 집에서는 또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아빠와 삼촌 그리고 할머니가 대화로 싸우고 계셨고,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 기숙사에 있는 동생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나와 동생은 아빠한테 이젠 더 이상 이러고 살지 말라고, 아빠가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가 할머니 가족들 보기가 좀 그렇다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아빠 노릇 좀 해달라는 등 온갖 잔소리 울분들을 울면서 얘기하였다.


그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상처이자 기억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빠의 눈물과 할머니의 오열 속에서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던 집안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가슴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는 몇 주 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짧았지만, 그 순간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찾게 해 주었다.

나는 다시 내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곧 2학년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