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년 넘게 시골에서 자라난 촌사람이다. 지금은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서울에서 자취하며 살고 있지만, 서울에서 보낸 시간보다 시골에서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래서 여전히 스스로를 도시 사람이 아닌 시골 사람이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또래에 비해 웃음기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말이 없고 촌스러운 내가 싫었는지 그들은 나를 잘 받아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마음 깊이 숨어들었고, 자존감은 낮아졌다. 점점 말도 줄어들고, 모든 잘못이 내 탓처럼 느껴졌다.
가끔 선생님이 나를 친구들 사이에 끼워주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눈치만 더 보였다. ‘혹시 친구들이 날 더 싫어하면 어쩌지? 고자질쟁이라고 놀리면 어쩌지?’ 이런 불안이 커져서, 오히려 마음을 더 닫았다.
집에서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색하지 않았다. 나에게 할머니는 딸처럼 아끼는 존재였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집안일, 밭일, 할아버지 간호까지 도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주눅 들거나 우울함보다는 억울함과 화가 더 컸다. ‘왜 여자라는 이유로 나만 시키는 걸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나는 꾸미는 것을 싫어했고, 머리를 항상 단정히 묶고 다녔다. 잘 때조차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묶고 잤다. 누군가 내 머리를 건드는 걸 몹시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이 내 머리를 보고 관사로 초대해 좋은 샴푸를 소개해 주고 직접 감겨주셨다. 그 후 상담도 자주 해 주셨다.
그 무렵 나는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꾸미지 않고, 냄새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냄새나지 않으려 애썼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놀림이 이어지자 거울조차 보지 않게 됐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정말 세상에서 제일 못생겼어.”
그럴 때마다 나는 깊은 숲 속, 아니 숲 속 땅속까지 파고들어 숨어버리고 싶었다. 아니면 아예 별이 되어 멀리 사라지고 싶었다.
그나마 나를 붙잡아 준 건 운동이었다. 축구를 너무 좋아했고, 달리기와 운동회는 내게 최고의 순간이었다. 특히 남자 친구들과 축구할 때면 세상 근심이 사라졌다. 여자 중에 축구를 좋아하는 건 나뿐이라, 온전히 경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버팀목은 글이었다. 글짓기나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 문화상품권을 받아 문구점에 가서 학용품을 샀다. 그건 용돈을 아껴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운동과 글쓰기, 이 두 가지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오자 또다시 불안이 찾아왔다.
‘중학교에 가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
그 걱정 속에서, 나는 겨울방학 내내 집안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운동선수나 요리사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꿈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