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허난허설 눈 속에 핀 매화처럼
■
박성진 시인
허난설헌 현대시조 6연 — “눈 속에 핀 매화처럼”
1.
눈 속에 핀 매화꽃을
나는 일찍이 가슴에 품었네
바람 속에 향기 머물다 가듯
세상 끝에도 피어날 이름 하나
글로 남긴 내 마음은
비단보다 하얗도다.
2.
부질없는 붓 끝에 묻은
눈물 같은 사연을 적노라면
달빛마저 숨죽인 밤이 있어
어느 벼루엔 이슬이 얼어붙고
귀한 꿈도 쓸쓸하게
종잇장 위에 지더라.
3.
아버지의 글마당 안에서
형제와 겨루던 어린 나의 봄날
천자문보다 빨랐던 내 손끝
여인이 아닌 시인으로 불리리
내 운명은 붉은 꽃,
흩날림 또한 운치로다.
4.
저 멀리 바다 끝을 보노라
기러기 떼 내 맘을 데려가고
서풍에 실린 이별의 무게는
옥비녀마저 꺾이게 하였으나
흩어진 나의 글씨는
천년을 넘어 울리리.
5.
세상은 나를 가두었으나
내 정신은 어느 창공을 날고
부엌에 있어도, 글은 하늘 향해
절개를 논하고 사무친 뜻 적어
내 존재는 연못 속
연꽃처럼 피어나네.
6.
나 허난설헌 이름 석 자
시로 지은 내 생을 아로새긴다
서녘노을 번질 그날이 와도
이 시 한 자락은 남아 있으리니
여인의 붓끝에도
한 나라 운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