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현대시조

시인 박성진

by 박성진

허난허설 눈 속에 핀 매화처럼


박성진 시인


허난설헌 현대시조 6연 — “눈 속에 핀 매화처럼”


1.


눈 속에 핀 매화꽃을

나는 일찍이 가슴에 품었네

바람 속에 향기 머물다 가듯

세상 끝에도 피어날 이름 하나

글로 남긴 내 마음은

비단보다 하얗도다.


2.


부질없는 붓 끝에 묻은

눈물 같은 사연을 적노라면

달빛마저 숨죽인 밤이 있어

어느 벼루엔 이슬이 얼어붙고

귀한 꿈도 쓸쓸하게

종잇장 위에 지더라.


3.


아버지의 글마당 안에서

형제와 겨루던 어린 나의 봄날

천자문보다 빨랐던 내 손끝

여인이 아닌 시인으로 불리리

내 운명은 붉은 꽃,

흩날림 또한 운치로다.


4.


저 멀리 바다 끝을 보노라

기러기 떼 내 맘을 데려가고

서풍에 실린 이별의 무게는

옥비녀마저 꺾이게 하였으나

흩어진 나의 글씨는

천년을 넘어 울리리.


5.


세상은 나를 가두었으나

내 정신은 어느 창공을 날고

부엌에 있어도, 글은 하늘 향해

절개를 논하고 사무친 뜻 적어

내 존재는 연못 속

연꽃처럼 피어나네.


6.


나 허난설헌 이름 석 자

시로 지은 내 생을 아로새긴다

서녘노을 번질 그날이 와도

이 시 한 자락은 남아 있으리니

여인의 붓끝에도

한 나라 운명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황진이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