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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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느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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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존경하는 스승님
엄창섭 박사님께
헌정의 시조
《청산도, 느림의 철학》
1.
배 한 척 물비늘 헤치고
청산도 바다를 건넌다
숨 고른 물결 속 삶이 있다
2.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풀벌레 울음마저 느린데
바람도 숨 죽인 듯 머문다
3.
돌담엔 이끼가 말을 걸고
초가엔 해찰한 빛이 눕는다
살아 있음이 여기 머문다
4.
마을 아래 항구가 잠들고
해녀의 물숨이 깊어질 때
파도는 기도를 닮아간다
5.
느리다 하여 멈춘 게 아니다
천천히 익히는 법이 있을 뿐
바다는 천년을 가르친다
6.
발밑의 흙에도 결이 있고
한 줌의 바람도 사연 있다
느림은 기억을 꺼내준다
7.
어느덧 나도 그 길을 걷고
무릎 아래 꽃 이름을 부르며
내 안의 속도를 내려놓는다
8.
청산도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들려주고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