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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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의 요리 시 동파육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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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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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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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 시가 된 고기》
> 가마솥 깊은 곳
서서히 익어가는
밤처럼 살결은 부드러워지고
기름 속엔 기다림이 녹는다
소동파(蘇軾)<소식>
시인이 남긴
한 줄 시처럼
짭조름한 간장
향에 진한 세월이 배어난다
장강을 따라 흘러든 바람이
돼지고기 위를 다정히 어루만지고
생강과 술, 팔각 하나씩
얹혀 그리움이 소스처럼 졸아든다
먹는 것이 아니라 시는 입안에서 흩어진다
한 점, 또 한 점
기억 속 고향이
혀끝에 핀다
그건 고기가 아니라 역사였고,
사랑이었고,
한 시인의 눈물 같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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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蘇軾)의 시구절
> 日啖荔枝三百顆,不辭長作嶺南人
하루에 여지 300개를 먹고도, 영남 사람 되는 걸 마다하지 않노라
― 《惠州一絕》
> 誰知盤中飧,粒粒皆辛苦
그릇 위의 한 끼 밥도, 알알이 모두 고된 수고로 빚어졌음을
― 《憫農二首》
> 且將新火試新茶,詩酒趁年華
새 불에 새 차를 끓이며, 시와 술로 한창때를 누리리라
― 《望江南·超然臺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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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의 평론
― 한 조각의 고기, 한 줄기의 문학 ―
배선희 시인의 「동파육 시가 된 고기」는 한 시인의 혀끝에서 시작된 시간의 기행이며, 소동파의 흔적을 따라 흘러내린 문학적 미각의 오마주다.
시의 첫 구절 “가마솥 깊은 곳”은 단지 요리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심연이자, 감정의 뿌리이며 역사의 불길이 은은히 살아 숨 쉬는 **'문명의 솥'**이다. 그 속에서 익어가는 고기는 밤처럼 부드러워진다. 그 부드러움은 삶의 아픔과 기다림이 녹아든 살결이며, 삶의 시간을 재현한 식감이다.
“기름 속엔 기다림이 녹는다”는 구절은 단연 백미다. 동파육이란 음식은 그냥 끓여 만든 고기가 아니다. 수많은 이별과 귀양, 유배의 서사 속에서 끓여진 인간의 눈물이며, 그 속엔 **유배지 혜주(惠州)**에서 써진 동파의 절창이 숨어 있다.
> 且將新火試新茶,詩酒趁年華
― 새 불에 새 차를 끓이고, 시와 술로 한창을 누리리
이 시구는 단순한 풍류가 아니다. 동파는 쓴 삶 속에서도 풍미를,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다. 동파육은 그러한 태도의 결정체다. 시인은 음식에 시를 담았고, 세속적 삶에 초탈과 관조의 철학을 볶아냈다.
배선희 시인의 시가 위대한 것은, 단지 동파육을 아름답게 묘사해서가 아니다. 그 속에 음식이라는 물질적 재료를 문학의 본질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짭조름한 간장 향에 진한 세월이 배어난다'는 구절에선 간장도 역사요, 양념도 시가 된다.
“그건 고기가 아니라 역사였고, 사랑이었고, 한 시인의 눈물 같은 맛이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문학적 클라이맥스다. 동파육은 그저 유서 깊은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유배지에서 백성을 위해 요리를 연구하던 소동파의 민본(民本)의 마음이요, 삶을 요리하고, 고통을 끓이며, 감정을 향신료처럼 졸인 한 사람의 시적 눈물이다.
소동파는 '삶은 시가 되고, 시는 요리가 된다'라고 말한다. 배선희 시인은 이 시에서 그것을 증명한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우리는 다시는 동파육을 '고기'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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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담긴 중국문화:
동파육은 송나라 유배문학의 결정체다. 혜주에서 백성들이 먹고 살길을 고민하며 만든 이 요리는, 단지 요리법만 남은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연결, 풍류와 실용, 삶의 깊은 지혜를 함께 전해준다. 중국 음식문화에서 '요리'란, 단지 먹는 것이 아니라 ‘인격의 확장’이다.
이 시는 그런 전통을 한국적 감수성과 여성적 섬세함으로 다시 그려낸 시적 재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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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이 시는 문학이 ‘미각’을 넘어 ‘역사’와 ‘사랑’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증거이다.
시인은 끓였고, 우리는 읽었다.
그러므로 동파육은 ‘음식’이 아니라,
입에 녹는 詩, 그리고 마음에 남는 人이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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