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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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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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 32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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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의 풍경》 - 박성진 시인 作
1.
민족이여 나누었네
허리를 자로 잰 듯
삼팔선 위에 선 사람
2.
경계엔 철조망 꽃
봄이 와도 못 피는
민들레조차 눈치 봐
3.
북녘 하늘 붉게 피고
남녘 달은 푸르니
빛깔마저 반쪽이라
4.
선전화 속 미소 뒤에
감시의 눈이 숨어
웃는 얼굴 무서워라
5.
남쪽선 뉴스거리
북쪽은 구호거리
진실은 도망 중이네
6.
땅굴은 굽이굽이
무너진 신뢰 아래
쥐도 지도를 보더라
7.
장군님은 잘 계시고
장병들은 굶는다네
밥 대신 충성 맹세
8.
남쪽 군부 '안 보쇼'
북쪽 군부 '체제쇼'
총성이 아닌 쇼성만
9.
기차는 부산 떠나
신의주 못 간다더니
그리움만 연착 중
10.
북녘에도 봄이 와서
꽃샘바람 불고 나면
사상검열 바람 불어
11.
평양의 도시락엔
비단처럼 쌓인 허기
밥보다 사상이 많다
12.
남쪽에선 "우리 민족"
북쪽에선 "주체 사상"
말은 하나 뜻은 둘
13.
이념이 입을 막고
역사가 발을 묶어
시인도 벙어리였다
14.
강냉이죽 한 숟갈에
눈물 삼키는 엄마
사랑도 배급제라네
15.
군사분계선 아래
사랑하면 반역죄
연애는 밀수 품목
16.
남북정상 손잡고도
한기 가시지 않고
손끝만 얼얼하더라
17.
공동경비구역엔
개미도 주민증 들고
넘나들어야 한다네
18.
"하나 되자!" 외치면
뒤에선 "그럼 체제는?"
결국 말은 통일불통
19.
고향집 강아지도
산 넘어 안 들리니
짖던 기억 잊었대
20.
남은 휴전선 철길
달릴 날 기다리며
녹슨 침목만 숨 쉰다
21.
남북의 말은 같고
뜻은 자꾸 엇갈려
"사과"가 두 번 죽네
22.
태극기와 인공기
함께 펄럭인 날에
하늘조차 숨을 쉬네
23.
북녘 소녀 꿈꾸기를
비날론 대신 꽃으로
빚어보길 기도하네
24.
남녘 소년 핸드폰에
형상은 보이나 마는
목소리는 금지곡
25.
분단은 습관처럼
누구도 의심 않고
벽이 되어 버렸네
26.
군복 입은 청춘들
모래 위에 서 있다
사상에 밀려간다
27.
북녘엔 '충성의 꽃'
남녘엔 '애국 페이'
꽃피면 바로 시들어
28.
평양냉면 차갑고
김치찌개 뜨겁고
우린 늘 데이더라
29.
도라산역 이정표
서울도, 평양도 보여
가긴 먼 이 정도
30.
하늘만 자유로워
철새는 오가지만
우린 철로 묶였네
31.
이 시조 넘어설 때
한반도 웃을까
웃음이 무기 되리라
32.
그날엔 시인들이
펜 대신 꽃을 들고
노래할 통일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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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및 비평
《분단의 경계에서 피어난 해학의 문학성》 – 박성진 평론
1. 미학적 구조: 시조의 해체와 재창조
이 시조는 3행 구조를 따르되, 전통과 현대의 언어를 엮어 냉소와 은유의 결합으로 분단 현실을 조명한다. 32 연이라는 방대한 구조는 단순히 양적 확장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층위를 따라 분단의 미학을 수직적으로 깊이 파고든다.
2. 해학과 풍자의 변증법
시 전체에 흐르는 해학은 절망의 토양에서 피어난 희망의 변주다. "밥보다 사상이 많다", "연애는 밀수 품목", "공동경비구역 개미도 주민증" 등은 웃음을 유도하면서도, 독자에게 강렬한 정치적 자각을 환기시키는 수사적 장치다. 해학은 웃음의 언어를 빌려 비판의 메시지를 정밀하게 조준한다.
3. 이념이 만든 상처의 문학적 복원
이 시조는 분단의 물리적 경계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단절을 문학적으로 복원하고자 한다. “사과가 두 번 죽는다”, “꽃피면 바로 시들어”는 동일어족 내의 비극과 왜곡된 정체성의 파열음을 상징한다.
4. 분단문학의 미래지향성
이 시는 종전이 아닌 ‘시문학적 종전’을 꿈꾼다. 마지막 연은 분단시조의 해체이자, 통일문학의 선언문이다. 펜 대신 꽃을 든 시인들의 모습은 실현되지 못한 통일의 이상을 문학적으로 선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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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용 결론 요약
> 이 시조는 단순한 분단의 재현이 아니라, 분단의 해학적 미학화를 통한 미래의 전망이다. 해학은 희망이자, 풍자는 비판이면서 동시에 치유다. ‘경계선의 풍경’은 오늘의 문학이 품을 수 있는 분단의 진실이자, 통일을 향한 시적 형상이다
박성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