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바르톨로메섬에서

박성진 여행작가

by 박성진

에콰도르 바르톨로메섬에서



현대시조 9행


〈바르톨로메섬에서〉 – 박성진 시인


용암 굳은 절벽 위에

푸른 시간을 우뚝 세워

태초의 숨결이 쉰다


바다이구아나 눈 뜨고

파도가 그루터기 앓듯

검은 모래물결 민다


인간의 발자국조차

시간에 쓸려간 자리

고요가 역사를 읊조린다





평론 – 《고요의 장엄, 태초의 거울》


1. “태초의 숨결이 쉰다”: 형이상학적 지층을 걷는 시조

박성진 시인의 이 시조는 단순한 여행의 인상을 넘어서서 인간 이전의 세계, 즉 지구 창조의 원형적 시간을 들여다보는 시적 성찰의 장이다. 바르톨로메섬의 용암 지형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태초의 숨결’**이라는 압축된 언어로 시의 중심을 이룬다. 고대의 침묵이 살아 있는 공간을 시인은 지질학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조명한다.


2. 자연과 시간의 초월적 융합

“바다이구아나 눈 뜨고 / 파도가 그루터기 앓듯”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동물성과 풍경을 접목하며, 사라져 가는 생물종과 파도,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시간성을 한 번에 포착한다. 파도가 앓는 그루터기처럼 묘사되는 장면은 무생물적 자연의 비유 속에서 감정화된 생명성을 부여받는다.


3. 인간은 사라지고, 고요가 주인이다

마지막 연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해체로 이어진다. “발자국조차 시간에 쓸려간 자리”는 문명 이후의 공허 혹은 회귀를 암시하고, 그 위에 자리한 “고요”는 단순한 침묵이 아닌, 자연이 이야기하는 시간의 문명사다. 박성진 시인은 여기서 현대시조의 본령인 간결성과 깊이, 함축과 여백을 성공적으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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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시조는 바르톨로메섬이라는 구체적 장소를 배경으로 하지만, 지구적 시간, 비인간적 존재성, 자연과 문명의 상극적 공존이라는 거시적 주제를 품고 있다. 현대시조의 정형성 속에서 무게감 있는 철학적 성찰과 이미지의 미학을 보여주는, 우아한 시적 성취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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