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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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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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서시, 오늘에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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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문학칼럼니스트)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한 줄이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를 멈춰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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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대의 양심, 윤동주의 시적 기도문
윤동주의 「서시」는 한국 현대시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향해, 하늘을 향해 속삭인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우리 모두의 양심을 건드린다.
「서시」가 발표된 시점은 식민의 말기, 절망이 짙던 암흑기였다.
하지만 윤동주는 거대한 정치적 구호나 외침을 시로 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끝내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내면 윤리를 말한다.
이러한 고백은 당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덕적 전율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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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시인은 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 보는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시구는
문학적 수사를 넘어 자기 존재에 대한 선언이자 유언이다.
시인은 죽음조차 감당할 수 있는 도덕적 결심의 언어로 이 시를 쓰고 있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한 자연의 대상이 아니다.
하늘은 윤리의 대우주이며, 자신이 끝까지 응시해야 할 절대의 상징이다.
이는 종교적 초월의 하늘이 아니라, 윤동주 개인이 응시하고 대면한 인간성과 양심의 심층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하늘을 우러 본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언어가 부끄럽지 않게 기록되길 바라는 윤리적 자기실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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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오늘, 우리는 서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2025년의 오늘, 윤동주의 「서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단지 역사 교과서 속 애국 시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내면의 윤리’**를 상기시킨다.
오늘의 언어는 빠르고, 자극적이며, 명료함을 가장한 선동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다르다.
그는 한없이 낮고 조용한 말로, 더 높고 깊은 책임의 무게를 견딘다.
이는 시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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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한없이 낮은 시어’가 남긴 가장 높은 유산
윤동주의 언어는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고함도, 구호도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단순한 수동성이 아닌, 내면의 윤리적 저항이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시대의 아픔을 품었고,
그는 외침 대신 고백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한없이 낮은 시어" 속에서 우리는 오늘,
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시인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새삼 묻게 된다.
윤동주는 「서시」 한 편으로 이 물음에 답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답을 다시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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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결론 – 시인의 눈빛이 오늘을 흔든다
윤동주의 「서시」는 시간에 녹슬지 않았다.
그가 남긴 눈빛, 그 조용한 맹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바라본다.
그 맑음 앞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얼굴로 하늘을 우러 볼 수 있는가.
「서시」는 그 질문을 끝내 거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 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윤동주는 오늘,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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