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박성진 시인의 분단문학 <평론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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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
평론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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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한강을 건너 분단의 밤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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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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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조: 〈해가 지지 않는 아이〉
박성진 지음
> 광주 너머 붉은 피,
자국 따라 걷던 발 –
책상에 눕힌 소년, 살아 있다 말했네.
울음 대신 탄식은
살갗을 비집고 나와
말의 종아리마다 총구가 달렸구나.
어느 밤 기억으로
나 또한 불려 가네 –
분단의 그림자 속 그 소년이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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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한강, 기억의 분단을 넘다”
**《소년이 온다》(2014)**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다룬 소설이자,
한강 문학의 정점에서 분단 이후 한국의 내면 분열을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 폭력에 희생된 무고한 아이들의 이야기지만,
보다 깊이 들어가면 이 작품은 “분단 이후의 대한민국이 저지른 내적 전쟁”을 고발한다.
이 소설에서 소년 동호는 단순한 피해자의 형상을 넘어,
모든 ‘기억의 공동체’가 외면한 진실의 화신으로 기능한다.
죽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그의 목소리는
한강 문학에서 전례 없는 육성의 서사로 등장한다.
이는 한강이 “침묵”과 “부재”의 미학에서
목격과 발화의 윤리로 전환했음을 뜻한다.
《소년이 온다》는 분단문학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준다.
군사분계선만이 아닌 기억과 망각의 분단,
국가 폭력과 시민 진실의 분단,
그리고 생존자와 죽은 자 사이의 분단이 시공간을 절단한다.
이때 ‘소년’은 그 모두를 몸으로 건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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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적 논평:
"한강은 ‘분단문학’의 마지막 목격자이자, 살아남은 자들의 고발자다."
한강 문학의 특징은 감각적 절제, 정제된 슬픔, 잔혹한 연민이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에서는 이 모든 것에 도덕적 절박함이 더해진다.
그녀는 더 이상 상징과 은유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죽은 자를 '나'라 부르게 하고,
한국 사회가 침묵으로 저지른 또 하나의 전쟁을 문학으로 다시 묻는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전통적인 ‘분단소설’과도 다르다.
남과 북의 갈등이 아니라,
**남한 내부의 ‘기억 분단’과 ‘감정의 분단’**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년이 오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소년이 여기 있다"라고 선언한다.
이 문장은 곧 문학이 살아남은 자들의 도피처가 되어선 안 된다는 엄중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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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문학은 망자의 귀를 쓰다듬을 수 있을 것인가
광주에서 죽은 소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강의 문장은 그를 기억의 시공간에 다시 데려온다.
이 소설이 분단문학의 중요한 지점에 놓이는 까닭은
‘국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너는 살아남았는가? 아니면 외면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곧 문학의 윤리적 소명이 된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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