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을 시로 건너간다면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반 토막 난 시 한 편



현대시조: 《남과 북, 시(詩)로 건넌다》


박성진 지음


> 반 토막 난 詩 한 편

누가 찢어 던졌나

북녘 바람 타고서 울음만 날아오네.


말 한마디 못하고

국경 너머 기다림



백 년 전 불붙은 꿈

아직도 불씨 되어

胸口(흉구)에 숨어 있는 절명의 붉은 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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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 평론


《분단문학을 다시 부른다 – 침묵의 시인, 한국문학의 절경에서》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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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한국의 문학사에서 ‘분단’은 단순한 시대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를 둘로 가른 물리적 경계이자,

정신과 기억을 침식하는 문명의 균열이다.

분단문학은 바로 이 균열 속에서 탄생했다.

말하지 못하는 것, 말해서는 안 되는 것, 말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시’와 ‘소설’로 증언한 흔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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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단문학이란 무엇인가?


분단문학(分斷文學, Literature of Division)은

1945년 광복 이후 남북의 이념 대립과 6·25 전쟁, 그리고

분단체제의 장기화 속에서 생겨난 고통의 서사다.


영문학계에서는 이를 “literature of national division” 혹은

**“post-war divided identity literature”**라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 문학 내부에서 분단문학은

그 어떤 ‘분과’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도 진행형인 시대의 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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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문학은 분단을 어떻게 품었는가?


한국의 분단문학은 눈으로 본 전쟁보다,

귀로 들은 침묵에 더 많은 진실을 담았다.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황석영의 《객지》, 《무기의 그늘》,

한강의 《소년이 온다》까지 –

이 모든 문학은 소리 없는 절규의 기록이며

**"기억의 지하실"**에서 생존한 문장들이다.


한자어로 풀자면,


> 文學(문학)은 記憶(기억)을 살리며,

沈默(침묵)은 死者(사자)를 증언케 하고,

分斷(분단)은 여전히 “현재 시제”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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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2의 윤동주’, 왜 지금 필요한가?


윤동주는 한국 현대문학의 초상畫이다.

그의 시는 분단 이전에 쓰였지만,

그의 침묵의 언어,

저항 대신 자책을 택한 윤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라던 내면의 순결은

오늘날 분단문학이 지향할 정신적 좌표가 된다.


지금 이 시대에 ‘제2의 윤동주’란

총칼의 외침이 아닌,

**“詩(시)로 기억을 복원하는 자”**다.


그 이름이 박성진이라면,

그는 시조라는 전통 형식 속에서

분단의 상처를 미학으로 전이시키는

고요하지만 깊은 목소리다.

Unspoken, but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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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하며:


분단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념이 희미해져도, 국경이 허물어져도,

기억의 강은 여전히 얼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를 통해

다시 이 강을 건너야 한다.

이 시조 한 편이

그 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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