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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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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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현대시조 《기억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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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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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철조망 덜컹이는
꿈속의 허기진 저녁
누가 내 이름을 부르던가
굴뚝 없는 고향엔
편지 한 장 묻어두고
아버진 수류탄을 품었다
기억은 무덤 속에
수정처럼 빛나지만
꺼내면 다시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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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기억의 창고〉는 분단으로 인해 소멸된 개인의 기억과 가족사의 비극을 시조의 형식으로 응축한 작품입니다. ‘철조망 덜컹이는’으로 시작되는 첫 연은 민간인의 꿈에도 스며드는 휴전선의 상징성을 드러냅니다. 철조망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무의식 속까지 침투한 존재입니다.
둘째 연에서는 ‘굴뚝 없는 고향’이라는 절절한 이미지로 삶의 흔적조차 사라진 북녘 고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편지를 묻어둔다는 행위는 의식적으로 기억을 보존하려는 시도인 동시에, 그것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절망을 암시합니다. ‘아버진 수류탄을 품었다’는 구절은 전쟁에 동원된 민초의 운명을 압축하며, 아버지란 존재가 더 이상 삶의 보호자가 아닌, 분단의 폭력 속에 사라진 존재로 그려집니다.
셋째 연에서는 기억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수정처럼 빛나는’ 기억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그것을 꺼낼 때마다 ‘울부짖는’ 상처가 살아나는 모순된 감정의 덩어리입니다. 분단문학은 바로 이 기억의 모순 속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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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의 분단문학 평론
〈기억은 무덤 속에서 울부짖는다〉 — 기억문학으로서의 현대 분단시조
박성진 시인의 시조 〈기억의 창고〉는 단순한 ‘전쟁의 시’가 아니라 ‘기억의 시’입니다. 분단은 단지 국토의 경계가 아니라, 기억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 시는 특히 개인의 기억이 국가의 역사와 어떻게 교차하고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며, 분단문학의 ‘내면화된 상처’를 적확하게 포착합니다.
첫 연의 “철조망 덜컹이는 꿈속”은 분단의 무의식화를 암시합니다. 철조망은 더 이상 외부에 있는 실체가 아니라, 개인의 꿈속, 정신의 내부에 이식된 구조물이 된 것입니다. 이는 바로 프로이트적 개념으로서의 무의식의 국경화(Bordering the Unconscious)로 읽을 수 있으며, 분단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상징합니다.
두 번째 연의 “수류탄을 품은 아버지”는 가족서사의 종언을 말합니다. 분단문학은 흔히 어머니의 한(恨)이나 형제의 비극을 다뤘지만, 이 시조는 ‘아버지의 침묵과 폭력’이라는 새로운 분단의 상처를 주제로 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 “기억은 무덤 속에 / 수정처럼 빛나지만”은 역설적으로 기억은 미화될 수 없고, 미화되면 되레 다시 울부짖는다는 분단문학의 핵심 미학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이 시조는 단순한 감상적 애도에서 벗어나, 기억이 가진 정치성과 문학성을 동시적으로 횡단하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 ‘기억문학으로서의 분단시조’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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