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박성진 시인의 현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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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현대시조 《백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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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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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내 뼈는 사라져도
이마엔 별이 남았다
이름 없이 전선에 누웠다
녹슨 탄피 옆에서
종이 한 장 품고 있다
"어머니, 오늘은 눈이 오네요"
눈썹도 잃은 채로
봄바람을 기다리며
나는 아직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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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이 시조는 휴전선 어딘가에 묻힌 무명 병사의 시선으로 서술됩니다. '백골'은 단순한 육체적 소멸을 넘어서, 이름조차 지워진 존재의 삭제를 의미합니다. 첫 연에서 “이마엔 별이 남았다”는 구절은 병사의 계급장을 상징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름 없이 죽은 존재에게 남은 단 하나의 사회적 흔적이자 국가 권력의 표식입니다.
두 번째 연은 이 시의 핵심 정서인 삶의 감각과 죽음의 거리를 절묘하게 보여줍니다. '종이 한 장 품고 있다'는 행위는 죽음 직전까지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인간적인 마지막 흔적을 나타냅니다. 그 편지 내용이 "어머니, 오늘은 눈이 오네요"라는 짧은 문장일 뿐이라는 점에서, 전쟁과 분단의 정치적 현실과 개인의 일상 감정 사이의 극명한 단절이 드러납니다.
마지막 연에서는 백골이 '봄바람'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봄바람은 단지 계절이 아니라, 통일의 희망이자 완전한 귀환의 은유입니다. 죽은 자조차, 아직도 ‘편지를 쓴다’는 구절은 실로 강력한 시적 발화이며, 분단 이후에도 진행 중인 감정의 전쟁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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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의 분단문학 평론
〈죽은 자의 언어로 말하는 시〉 — 분단의 윤리와 시조의 부활
박성진 시인의 시조 〈백골의 편지〉는 죽은 자의 시점에서 분단을 역추적하는 고요한 비명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말할 수 없는 자를 대신해 말하는 문학으로서의 사명을 짊어집니다.
'백골'은 죽은 자이며, ‘편지’는 산 자에게 보내는 유일한 소통의 수단입니다. 이 시에서 편지란 텍스트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분단의 땅에 묻힌 '말해지지 못한 것들(Unspoken)'의 기록물입니다. 바슐라르가 말한 '기억의 상자'처럼, 시인은 백골을 '기억을 간직한 존재'로 재해석합니다.
"눈썹도 잃은 채로 / 봄바람을 기다린다"는 구절은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를 기다리는 윤리적 반전을 포함합니다. 이는 로랑스 랑송의 '전쟁의 죽은 자들이 산 자를 부른다'는 프랑스 분단문학 이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조는 시적 화자의 시점 선택에 있어 탁월합니다. 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회피하지 않고, ‘죽은 자의 언어’를 빌려 말함으로써, 오히려 역사의 침묵을 흔드는 윤리적 저항을 실현합니다.
분단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시는 그 물음에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답합니다.
“나는 아직 편지를 쓴다.” 그 문장이야말로, 분단문학의 미학이자 존재론입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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