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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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시로 짓는 향기 오롯이 통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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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로 지은 시 — 황진이와 김은심의 대화시조 3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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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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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숨결마저 얼어붙은 겨울 끝 철책 너머
내 사랑도, 내 시조도 멎은 채로 잠들었소
누가 와서 이 고요에 불을 다시 지피련가
김은심
할머니의 그 숨결이 제 마음을 밀어왔죠
황톳빛 긴 외줄 같은 분단을 건너보자
나도 시로 말하렵니다, 님이 그리웠다고요
황진이
비단보다 더 질긴 건 님 잃은 이 여인의 속
내 나이 묻지 말거라, 피멍도 나이를 먹어
꽃이 져도 피는 거지, 그리움은 사라지나
김은심
피멍진 그 음성에도 향기가 남아있어요
슬픔마저 고와서요, 진눈깨비에 젖듯이
황진이 님, 내 가락도 이제는 닿고 싶어요
황진이
잊었다며 다짐해도 가슴은 먼저 떠올라
가야산 자락에도 저 님의 발자국 있고
기다림이 죄라 해도 나는 끝내 기다릴래
김은심
죄라 해도 아름다운 건 사랑뿐이 아니죠
강물처럼 흘러가는 건 우리의 바람이죠
언젠가는 무너질 것, 마음부터 닿는다면
황진이
진심보다 센 것은 없소, 칼도 녹인다 했소
그 시절의 내 노래도 나라 위해 띄운 바다
숨결로 지은 시는요, 철도 막지 못하리라
김은심
숨결 따라 달이 오고, 달빛 따라 님이 와요
휴전선은 그때쯤엔, 울타리일 뿐이겠죠
시가 먼저 건너갑니다 — 사랑은 늦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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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 박성진 시인
이 3탄 대화시조는 황진이와 김은심, 두 여인의 숨결을 통해 이어지는 시심과 그리움의 대서사시입니다.
이전 두 작품이 분단의 현실을 예술과 정한으로 승화했다면, 이번 편은 한층 더 내면적 고백과 역사적 공감대에 초점을 둡니다.
황진이는 “숨결마저 얼어붙은 겨울 끝 철책 너머”라고 읊으며, 단지 물리적 분단을 넘은
정서적·영혼의 동결을 토로합니다.
이에 김은심은 “황톳빛 긴 외줄 같은 분단을 건너보자”는 시구로 화답하며,
과거를 듣고, 현재를 잇는 후예의 책임과 슬픔을 안고 갑니다.
“피멍도 나이를 먹어”라는 황진이의 시구는, 시대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과 상처를
놀라울 정도로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대목입니다.
김은심의 “시가 먼저 건너갑니다 — 사랑은 늦지 않아요”는,
현대 시인의 확고한 통일 감각과 시에 대한 신념을 담은 선언입니다.
이 작품은 결국, 시조가 시대를 잇고, 여성이 민족의 기억을 품고 살아낸다는 진실을 노래합니다.
분단은 물리적 경계일 뿐,
시와 사랑은 결코 늦지 않으며, 결국 먼저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이 담긴 시조입니다.
박성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