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십자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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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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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십자가에 걸었다
무력한 언어 하나로
나는 그 곁을
한 번도 제대로 지나가지 못했다
언제나 외면했다, 핑계를 대며
시인으로 산다는 것
누군가의 상처를 가슴에 박는 일
그 피를 먹고 시를 쓰는 일
나는 몇 번이나
무고한 침묵 앞에서
편리하게 침묵했다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에도
묵시록처럼 시를 걸어놓았다
윤동주여,
당신의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상징이었다
나는 오늘
그 십자가를 만져본다
시가 너무 가벼워진 시대,
다시 당신의 무게가
필요해졌다
말보다 더 무거운 당신의 침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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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십자가 이후〉: 시인의 언어는 상처 위에 놓인 도마였다
윤동주 〈십자가〉의 현대적 계승과 박성진 시의 ‘시적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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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동주의 십자가는 신앙의 상징이 아니라 윤리의 무게였다
윤동주의 시 〈십자가〉는
종교시로 오해받기 쉽지만,
실상은 신을 부르지 못하는 시대의 죄의식을
은유로 새긴 깊은 윤리적 작품이다.
> 쫓아오던 햇빛이다
십자가처럼 생긴
고독 속을 걸어간다
이 도입부는
어떤 외부의 신성함도 없이,
그저 “햇빛”과 “고독”으로 구성된다.
그의 십자가는 예수가 아니라
시인의 자의식,
즉 자신이 지고 가야 할 부끄러움과 침묵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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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성진의 시는 그 십자가를 다시 만진다
박성진은 시에서
윤동주의 십자가를 직접 만져본다.
> 당신은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에도
묵시록처럼 시를 걸어놓았다
‘묵시록(apocalypse)’은
말의 끝이자, 말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박성진은 윤동주의 시를 신비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의 무언(無言)의 엄중함을 꿰뚫어 본다.
그는 시인의 책무를 이렇게 말한다:
> 누군가의 상처를 가슴에 박는 일
그 피를 먹고 시를 쓰는 일
이 구절은
시인이 단순히 고통을 관찰하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내면화하고 응시해야 할 존재임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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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는 이제 너무 가벼워졌고, 십자가는 사라졌다
박성진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 시가 너무 가벼워진 시대,
다시 당신의 무게가 필요해졌다
이는 윤동주 80주기를 맞아,
우리가 오늘날 '무게 없는 시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비판이다.
SNS, 유행, 포장된 언어들 속에서
시는 점점 더 자기 위안의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는
**'자기 심판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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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윤동주의 십자가는 죽음이 아닌 ‘부끄러움의 조형물’
박성진은 말한다:
> 당신의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상징이었다
이 구절은
윤동주의 시가 신학이 아닌 자기 검열의 시학이었음을
가장 정직하게 말해준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고
그 침묵을 견디는 일이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며,
윤동주 이후의 시인은
그 무게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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