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칼럼니스트
윤동주의 로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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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로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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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
나는 오늘
너무 많은 것들을 보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손가락 끝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밀어내고
좋아요 하나에
죄책감도 희석되었다
화면 속 시인들은
침묵보다 간편한 정의를 말했고
말보다 간편한 멸시를 흘렸다
나는 이제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는다
그 하늘은
검색되지 않는다
윤동주여
당신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부끄러움은
지금은 이모지 하나로
얼버무려진다
나는 이제
시를 로그아웃한다
침묵이 아니라
망각 속으로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시'가
로그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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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윤동주의 로그아웃》: 침묵도, 말도 무기력한 시대의 시인 윤동주
‘별을 헤는 밤’ 이후, 어두운 스크린을 응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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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가 ‘로그아웃’하는 순간
“윤동주의 로그아웃”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시대적 장치를 넘어,
‘시의 종말’을 선언하는 역설적 장치다.
> 나는 이제
시를 로그아웃한다
침묵이 아니라
망각 속으로
윤동주 시인의 문학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윤리적 긴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 시는
**‘하늘이 검색되지 않는 시대’**에선
그 윤리조차 기억의 피로로 지워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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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NS, 스크린, 그리고 무감각의 부끄러움
> 손가락 끝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밀어내고
좋아요 하나에
죄책감도 희석되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존재적 고백이었으나,
오늘의 부끄러움은 일시적 리액션이다.
시인은 고통을 마주하는 대신
**정보와 감정이 뒤섞인 피드(feed)**를 스크롤한다.
시인은 더 이상
세상을 ‘쓰지’ 않고,
‘내려받는다’.
이때의 시는 더 이상 윤동주가 말하던 ‘침묵의 윤리’가 아니라,
망각의 가벼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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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동주는 ‘로그인’하는가
시의 마지막 행은 전복적이다.
> 그리고 마침내,
당신의 '시'가
로그인한다
이 문장은
윤동주의 시가 더는 고전이 아님을 선언한다.
그의 시는 지금 이 순간,
잃어버린 ‘느낌의 감도’와 ‘고백의 온도’를 되찾기 위해
다시 접속되고 있다.
윤동주의 시는 이제,
로그아웃된 시인의 세계를 다시 켜는 '계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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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론: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오늘 어떤 얼굴인가
윤동주의 시학은
늘 고백, 성찰, 침묵, 그리고 무게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가벼운 공유와 클릭으로
모든 것을 지나치고,
기억하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다.
박성진 시인의 이 시는
윤동주를 소환하여 ‘현재적 양심’을 재부팅(reboot)한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이제 다시 시가 ‘무거워져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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