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마을의 이름들

박성진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지워진 마을의 이름들



〈지워진 마을의 이름들〉


– 우크라이나 대기근, 홀로도모르


박성진 시인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눈이 아니라, 굶주림이 내렸다

밀밭은 바람으로 채워지고

곡물창고는 자물쇠로 봉인되었다


밥 짓는 연기가 사라지고

마당의 아이는 흙을 먹다 쓰러졌다

어미는

밤마다 죽은 자식의 이름을 꿰매듯 부르고 있었다


그때,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한 마을,

그리고 또—

지도에서, 기록에서, 언어에서


그들의 이름은

'배급표 없음'으로 대체되었고

그들의 생은

묵음(黙音)의 행간으로 밀려났다


뼈가 볕에 말라 굴러갔고

어른은 아이를, 아이는 다시 흙을 먹었다

말해선 안 되는 고통은

국가의 입법으로 봉인되었다


홀로도모르—

그 이름조차 금기였던 시절

산 자들은 벽을 보고, 죽은 자들은 별을 봤다

마을 어귀의 십자가는

묵묵히 바람에 꺾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한 글자씩,

불려선 안 된다고 지워졌던 그 이름들을


시는 증언이다

시는 무덤 위에 세우는 언어의 비석

너희의 마을이

다시 이 시 속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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