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바람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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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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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 칼럼니스트
창을 반쯤 열어두었을 뿐인데
바람이 들어와 방 안을 건넜다.
말 한마디 없이, 다만 스쳐간 마음처럼.
커튼이 천천히 흔들리고
책장 위 먼지가 가볍게 날렸다.
그때 나는 문득, 오래된 얼굴을 떠올렸다.
잊었다고 믿었던 이름 하나가
바람의 끝자락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 짧은 흔들림이
이 하루를 조용히 흔들었다.
지나간 건 바람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멈춰 있다.
말 없는 것이 오래 남는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