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은 작가님"바다에 놓고 온 이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바다에 놓고 온 이름



〈바다에 놓고 온 그 이름〉


박성진 시인·칼럼니스트


너에 대한 그리움을

저 바다에 묻는다

이름 없는 조각배처럼

소리 없이 밀려가게 두었다


파도에 실어 보낸 이별

모래알 같은 후회

파도가 닿는 가장 먼 곳에서

나는 비로소 용서받는다


그리움마저

놓아줄 때가 있다

흩날리는 구름처럼

붙잡지 못할 마음을 안다는 건


슬픔의 끝이 아니라

사랑의 한 모양이다


바다는 내 마음을 안아주었다

물빛으로, 침묵으로,

무한한 품으로 나를 감쌌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사랑은 보내는 일이고

기억은 남는다는 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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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바다, 그리움, 그리고 작가의 운명에 대한 시적 성찰


박성진 시인의 시 〈바다에 놓고 온 그 이름〉은 단순한 이별의 노래를 넘어서, 내면의 성숙과 문학의 존재론적 사유를 담아낸 수작이다. 이 시는 한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을 ‘바다’라는 우주적 상징 안에 녹여내며, 사랑의 본질과 예술가의 책임을 함께 성찰한다.


1. 바다: 시적 존재론의 심연


시의 초입에서 "너에 대한 그리움을 / 저 바다에 묻는다"는 구절은 단순한 은유를 넘어서, '바다'가 시인에게 있어 기억과 감정의 궁극적 귀결점임을 암시한다. 바다는 상처의 도피처이자, 마음의 정화 장소이며, 더 나아가 존재의 거대한 거울로 기능한다. "이름 없는 조각배처럼 / 소리 없이 밀려가게 두었다"는 표현은 그리움의 해체 과정을 섬세히 포착하며, 인간의 감정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미세하고 덧없는지를 시사한다.


2. 파도와 후회: 내면적 정화의 과정


중반부에서 시인은 파도에 실어 보낸 이별과 "모래알 같은 후회"를 이야기한다. 이때 ‘파도’는 감정을 떠나보내는 수단이자, 자기를 정화시키는 치유의 흐름으로 등장한다. 특히 "파도가 닿는 가장 먼 곳에서 / 나는 비로소 용서받는다"는 대목은 내면의 자책과 치유가 시의 핵심 주제로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타인을 향한 용서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용서’라는 점에서 이 시는 한층 성숙한 감정의 층위를 보여준다.


3. 그리움의 초월과 사랑의 본질


"그리움마저 놓아줄 때가 있다"라는 구절은 이 시가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라 ‘놓아줌’이라는 철학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특히 "슬픔의 끝이 아니라 / 사랑의 한 모양이다"는 시구는 이 시의 핵심 윤리를 천명한다. 즉, 진정한 사랑이란 붙들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놓아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시인의 감정이 개인의 슬픔을 넘어 보편적 통찰로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4. 작가의 숙명: 담담히 담아내는 자


마지막 연에서는 시인이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스스로 천명한다. “사랑은 보내는 일이고 / 기억은 남는다는 걸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 담담히 담아내는 것이 / 작가의 운명이라는 걸.” 이 부분은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선언이자, 작가라는 존재가 감정에 휩쓸리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고 승화하는 자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리움의 감정을 넘어서 그것을 ‘담담히’ 기록하며, 고통과 사랑의 역사를 감정에서 의미로 승화시키는 자이다.


5. 문학적 가치와 미학


이 시는 단순한 서정시의 틀을 넘어서, 시적 자아의 철학적 성숙을 담아낸다. 언어는 절제되어 있고, 은유는 과장되지 않으며, 구조는 안정적이다. 그 안에서 시인은 자기만의 감정이 아닌 독자의 감정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바다’와 같은 시적 공간을 창조해 낸다. 이러한 확장성은 이 시가 독자와 깊은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며, 현대 서정시가 나아갈 길을 조용히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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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박성진 시인의 〈바다에 놓고 온 그 이름〉은 한 편의 아름다운 이별 시를 넘어, 작가란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슬픔을 묵직하게 담아낸 시적 선언이다. 그것은 고요하지만 단단한 어조로 독자의 내면에 말을 건네며, 누구나 품고 있는 '놓아주지 못한 그리움'을 대신 말해주는 대리자의 목소리를 갖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시는 예술가란 어떤 슬픔 앞에서도 침묵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며 기록하는 존재임을 고요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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