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아직도 그 광장에 있다》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소년은 아직도 그 광장에 있다》



《소년은 아직도 그 광장에 있다》


박성진 시인


(시 원문 아래에 각 연별 비평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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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왔다

그날의 광장에,

함께 매달려 있었던 피의 나무들 아래로

엄마의 손을 떠난 자식처럼

두 눈은 끝내 감기지 못한 채,

어두운 창고 바닥 위에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묻고 있었다" 》


▶ 평론

첫 연에서 “소년이 왔다”는 선언은 단순한 과거형 사건보고가 아닌,

시간을 뚫고 도착한 살아 있는 진실의 등장이다.

엄마의 손을 떠난 자식, 감기지 못한 두 눈은

『소년이 온다』 속 ‘동호’의 죽음을 은유하며

죽은 자가 되레 살아남은 자들을 바라보는 역전된 시선의 구조를 만든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묻는다”는 구절은

부검당한 시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고통과 증언자로서의 존재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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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말했다

나는 살아 있었다,

나는 아직도 숨을 쉬고 있었다고

고막을 찢으며 울리는 총성은

내가 무언가를 외치려 할 때마다

내 입 안에 모래처럼 박혔고


▶ 평론

이 연은 ‘죽음’ 이후에도 말해야만 하는 존재의 비명을 드러낸다.

“나는 살아 있었다”는 선언은

한강이 끝내 말하지 못한 내면의 목소리를

시가 대신 터뜨리는 **언어의 복권(復權)**이다.

모래처럼 박히는 총성은 표현불능의 폭력을 상징하며,

고통의 언어마저 검열된 체제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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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행진은

살아남은 자들의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지하로 묻혀 갔으며

언젠가 진실이 올 것이라는 희망은

끝내 초록 고무신처럼

찢겨 나갔다


▶ 평론

이 대목은 한강의 원작이 끝없이 질문한 윤리적 침묵의 구조를

시적 언어로 재구성한 장면이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를 지우는 일이며,

“초록 고무신”의 찢김은 아이들의 희망마저 파괴된

비가역적 역사파괴의 상징이다.

이 연은 사회가 기억을 유보할 때, 죽음이 얼마나 더 깊이 반복되는지를 문학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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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왔다

그의 발자국을 따라

역사의 맨살을 걷는 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피로 쓴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바람을 뚫으며,

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 평론

여기서 시는 기억의 계승자들—살아남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역사의 맨살”은 피 흘리는 진실을 의미하며,

“피로 쓴 책”은 『소년이 온다』 자체를 은유함과 동시에,

그 책을 넘겨받은 자들의 윤리적 독서, 행동, 고백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문장은

문학이 단지 미화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어야 하는 용기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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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왔다

그리고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

지워지지 않은 목소리,

사라지지 않은 고통,

되돌릴 수 없는 사랑,

그가 남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이 감당해야 할

기억의 빚이었다


▶ 평론

마지막 연은 시 전체의 철학적 정수를 응축한 대목이다.

‘아직도 떠나지 않은’ 소년은

문학의 내면, 독자의 심장, 사회의 양심에 남아 있는 현재형의 증언이다.

죽음이 아니라 “기억의 빚”을 남겼다는 선언은,

한강 소설의 윤리적 질문을 시인이 도덕적 명령어로 전환한 문장이다.

문학은 애도가 아니라 책무의 언어로 존재해야 한다는

박성진 시인의 강렬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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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 시와 소설 사이, 증언과 예언 사이에서


이 시는 『소년이 온다』의 문학적 유산을

“시”라는 형식으로 다시 말하고, 다시 살리는 부활의 언어이다.

비평을 시 밑에 밀착시킴으로써, 독자는

각 문장마다 역사와 윤리, 고통과 책임을 직접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은 문학이 단절된 언어의 향연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증언의 다리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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