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에서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피사의 사탑에서



― 피사의 사탑에서


박성진 시인


점토의 살갗 위에

너를 세운 것이 죄였을까

바람조차 눅눅한 토스카나의 어느 오후

첫 삽은

하늘이 아니라 땅의 속내를 건드린 것이었다


대리석보다 먼저 흔들린 건

사람의 야망이었고

지반보다 얕았던 건

시간을 믿지 못한 신념이었지


1173년, 종소리는

순결한 설계도를 품고 울렸지만

너는 한쪽 어깨를 내주고

세상에 귓바퀴를 대었다

기울어간다는 건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


사람들은 너를

결함이라 말했지만

나는 안다

기울어진다는 건

쓰러지지 않으려는

천년의 고백이라는 것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멈추어야 했던 계절들

기억의 층층이

인내로 쌓이며

네 안에는 종이 아닌

영원의 숨결이 울리고 있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네 곁에 서서

손바닥으로 너를 받치는 흉내를 낼 때

실은 그들이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너에게 기대는 것이었을까


피사의 사탑이여

너는 곧게 선 적이 없었기에

그토록 곧게

우리의 시간을 울렸다


기울어진 사랑이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너는 기울었기에

낭만의 피사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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