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스의 민족사 떡볶이에 대한 변론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붉은 소스의 민족사-떡볶이에 대한 변론





〈붉은 소스의 민족사 — 떡볶이에 대한 변론〉


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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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탄생 — 밀가루의 기도


전쟁은 끝났고

쌀은 사라졌으며

가난한 어머니들이

밀가루를 반죽하여

흰 떡을 빚었다


모래처럼 푸석한 시절,

고추장은

단 하나 남은 불꽃이었다


빨갛게 무장한 소스

그 위에 고물처럼 던져진

어묵, 양배추, 삶은 달걀—


떡볶이,

이 이름은 가난이 지어낸

대한민국 최초의 군가(軍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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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골목의 문명


그 옛날 종로다방 옆 골목에도 있었고

서울역 앞에도, 낙원동에도 있었다

지붕도 없는 포장마차 아래서

우리는 국적도 없이 섞여 먹었다


중학생도, 노동자도,

첫 키스를 망친 연인도

전태일도, 이한열도

잠깐은 입 안의 매운맛에 침묵했다


국민학교 앞에서부터 청와대 담장 밑까지,

떡볶이는

한국어로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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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분식의 혁명


붉음은 죄가 아니다

붉음은 단지 입 안의 진실이다

태극기의 태양이 입술로 옮겨온 것뿐이다


“맵다”는 말은

억눌린 감정의 다른 이름이었고

“더 주세요”는

저항과도 같은 청원이었으며


한 번도 권력을 가진 적 없는 음식이

민중의 혀끝에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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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사랑의 장


네가 울었을 때

나는 떡볶이를 사주었다

그건 고백이었다

밥보다 먼저 건넨, 국물보다 진한 말이었다


지갑이 가벼워도

떡볶이는 묵묵히 두 사람이 앉을

테이블을 마련했다


사랑이란 때로,

매운 것을 함께 먹는 일이며

뜨거운 것을 천천히 나누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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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세계로 가는 붉은 혀


코리안 스트리트 푸드!

외국인은 혀를 내두르고

한국인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우리야.”


붉은 소스는 이제

한류의 혈관 속을 돌고

K-떡볶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도시를 점령해 간다


그 옛날 부산 피란민 거리에서 시작된 국물은

이제 파리, 베를린, 뉴욕의

청춘을 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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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끝맺음 — 고추장 문명


마지막 젓가락,

차가운 밀떡 하나 남겨두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고 매운 음식은

얼마나 많은 계절을 데웠으며

얼마나 많은 기억의 목울대를 지나

지금 내 입 안에서 끓고 있는가?


떡볶이 —

이것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민족의 소우주다.

입으로 기억하고, 혀끝으로 쓰는

작은 한 편의 역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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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나는 떡볶이를 ‘분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가난했던 시대의 자존심이며,

붉은 혀끝으로 쓰인

한국인의 뜨거운 연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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