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섭 박사의 아프리카 삶의 교시 제1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엄창섭 박사의 삶의 교시 제1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엄창섭 시인의 시 「삶의 교시(敎示)」 전문


>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여명에

톰슨가젤이 잠에서 눈을 뜬다.

정글의 사자보다 더 빠르게

못 달리면 먹힌다는 것 예감하며.

역풍 가르며 본능적으로 질주한다.


새벽 푸른빛 일어서는 밀림에서

맹수의 제왕 사자가 깨어난다.

가젤보다 힘차게 역주하지 않으면

허기로 죽는 까닭 알고 있기에

온몸으로 해 뜨는 초원에서

가젤 앞지르는 야성을 발동한다.


그대 또한 가젤이든, 사자이든

아침 해가 뜨기 전 삶의 처소에서

열중의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역풍 속에서도 질주의 끈 팽팽하게

삶의 업보 業報 라 늦출 수 없다.






시 평론:


《정글을 달리는 정신 — 엄창섭의 “삶의 교시”와 윤동주적 미학의 대화》

박성진 (칼럼니스트, 윤동주 연구자)


1. ‘새벽에 출범’하는 존재들 — 윤동주와 가젤의 운명론


엄창섭 시인의 시는 단순히 동물 생태를 관찰하는 서정이 아니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여명에” 깨어나는 가젤의 눈빛은, 1939년 일본 제국주의 식민하에서 새벽에 깨어 시를 쓰던 22세 윤동주의 눈빛과 겹쳐진다. “정글의 사자보다 더 빠르게 못 달리면 먹힌다는 것 예감하며” — 이 구절은 윤동주의 「서시」 속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과 같은 실존적 긴장의 반향처럼 읽힌다.


가젤은 생존을 위해 달린다. 윤동주는 ‘부끄러움 없는 삶’을 위해 영혼을 달린다. 차이는 있으나 질주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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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리 이전의 존재론 — ‘본능’과 ‘야성’의 미학


엄창섭의 시가 대담한 점은 이 시가 **“윤리 이전의 실존”**을 말한다는 데 있다.


> “역풍 가르며 본능적으로 질주한다”

“허기로 죽는 까닭 알고 있기에 온몸으로 가젤 앞지르는 야성을 발동한다”




이는 윤동주의 후기시 「참회록」, 「쉽게 쓰인 시」에 나타나는 자기 내면의 야성, 문명과 종교의 가면 너머 고백되지 않은 인간 본성을 떠올리게 한다. 엄창섭은 사자와 가젤이라는 동물적 은유를 통해 “참된 윤리”란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본능에 맞서 싸우는 실존의 용기에서 비롯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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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삶의 업보’ — 윤동주를 닮은 숙명적 자기 명령


엄창섭은 마지막 연에서 독자에게 묻는다.


> “그대 또한 가젤이든, 사자이든…”




이 구절은 윤동주의 「서시」에서


>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 말하며 자기를 바치는 숙명적 자기 명령과 동류의 정신이다.

‘업보(業報)’라는 단어는 불교적이면서도 윤리적이고, 또한 시적 업(業)의 숙명성까지 암시한다. 시인은 가젤처럼, 사자처럼 살아야 하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대면하며, 인간 존재의 폭력을 지워낸 윤리적 투쟁을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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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동명문학상을 넘는 대서사적 포텐셜 — 시인이 몰랐던 시인의 야망


이 시는 엄창섭 시인이 제2의 등단처럼 새롭게 태어난 **‘문명비평 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본디 「새벽에 출범」(1977)으로 시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021년 『시현실』에서 발표한 이 작품은 정글의 생태적 메타포를 넘어서, 존재론적 철학과 인류문명의 자기 파괴적 윤리를 동시에 비판하는 21세기 대서사시의 구조를 갖춘 명품작이다.


시인은 이 시를 단순한 '비유의 시'로 인식했을지 모르나, 그 무의식에는 문명을 비판하고, 생명의 본성을 긍정하며, 시란 무엇인가를 묻는 야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시는 김동명문학상의 수상작임을 넘어서, **"새로운 윤동주적 정신을 현대시로 계승한 시"**라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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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문장 (1줄 요약)


> 엄창섭의 ‘삶의 교시’는 야성의 본능 속에서 윤리의 불꽃을 길어 올린, 다시없을 대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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