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산업화 시대의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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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대의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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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저녁 뿌연 연기 속에
노동의 그림자가 줄을 섰다
기름때 묻은 손등에
붉디붉은 고추장 국물이 닿으면
하루의 피로도 달달 히 녹았다
불빛 아래 끓던 은쟁반 떡볶이
단칸방 벽지처럼 눅눅한 마음에도
고추장의 매운 위로가 번졌다
엄마는 그릇을 놓지 않았다
나눌 게 없어 더 많이 주었다
쇳소리 요란한 골목 끝
굽은 허리로 쪼그려 앉은 도시의 어머니들
달큼한 떡볶이 한 입에
산업화의 눈물도 참기름처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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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정통문학비평)
1. 시적 배경과 역사성 — ‘뿌연 연기’와 도시화의 상징성
> “저녁 뿌연 연기 속에 / 노동의 그림자가 줄을 섰다”
이 도입부는 1960~70년대 한국의 산업화 초기,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당시 서울과 부산 같은 도시의 공장지대에는 어스름한 매연과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노동자의 퇴근 줄이 ‘연기’와 함께 겹쳐지는 장면은 사회 구조의 질감까지 함께 안겨준다. 이 연기는 산업화의 상징이자, 시인이 바라본 안개의 시간, 희미한 희망과 피로의 시각적 재현이다.
2. ‘고추장 국물’의 매운 위로 — 음식의 감각적 치유력
> “기름때 묻은 손등에 / 붉디붉은 고추장 국물이 닿으면”
“하루의 피로도 달달 히 녹았다”
여기서 떡볶이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선다. 고된 하루 끝, 고추장 떡볶이 한 접시는 도시 서민들의 자존감과 생존을 회복시켜 주는 치유의 음식이다. 국물은 노동자의 손등을 씻어주고, 혀끝을 위로하며, 존재를 달래는 상징이다. 특히 “달달 히”라는 표현은 매운 고추장 속에 설탕의 위로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화의 상처 위에 뿌려진 소박한 감각의 위로다.
3. 도시 여성과 어머니 — 노동자 여성의 상징
> “엄마는 그릇을 놓지 않았다 / 나눌 게 없어 더 많이 주었다”
여기서 ‘엄마’는 개인을 넘어선 존재다. 도시 골목에서 떡볶이를 팔던 아주머니, 철공소 뒷골목에서 자식을 키우던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한국 사회의 근간을 떠받친 이면의 어머니들이다. 나눌 것이 없어 더 주는 ‘결핍의 사랑’은 한국 사회가 견뎌온 모성의 상징이며, 산업화 속에서 여성들이 감내했던 희생과 지혜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4. 시적 클라이맥스 — 음식과 눈물의 융합
> “달큼한 떡볶이 한 입에 / 산업화의 눈물도 참기름처럼 삼켰다”
이 마지막 연은 가장 서정적이고 정치적이다. 떡볶이의 달콤함은 생존의 처절함을 감싸는 위장된 감정이다. ‘눈물’은 산업화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가족, 건강, 공동체, 존엄—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 ‘참기름처럼’ 삼킨다는 표현은, 억눌림의 미학이자 생존을 위한 순응의 방식을 드러낸다. ‘참기름’은 단맛과 함께 음식의 윤기를 주는 요소다. 즉, 눈물도 감추고 윤기 있게 삼키는 이 도시의 민중은 눈물조차 품격 있게 견디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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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의의 정리
서민의 음식 떡볶이를 통해 산업화 시대의 사회 구조, 계층 정서, 여성의 역할, 음식의 감각성을 통합적으로 그려낸 시
한국 현대 도시 시의 주요 모티프(떡볶이, 어머니, 연기, 고추장 등)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시대 초상화로 승화한 작품
‘먹는 행위’를 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은유로 변환시킨 감각적 서정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