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황태구이-겨울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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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구이 — 겨울의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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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눈발 속 떠밀려
덕장 끝에 매달린 바람,
말라가는 속살에
겨울이 스며들었다.
이듬해 봄,
누군가의 손길 따라
장작불에 노릇노릇 구워질 때
나는 조용히
속을 열었다.
한 점, 입술에 닿으면
아버지의 두툼한 손등 같고
눈밭을 걷던
어머니의 구들장 같다.
짭조름한 그리움이
입안 가득 퍼지고
한 모금 막걸리처럼
묵은 눈물이 고인다.
나는
한 생의 풍상을 견뎌낸
노인의 이야기처럼
구워지는 황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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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박성진 칼럼니스트 · 윤동주 연구자
박성진 시인의 「황태구이 — 겨울의 불빛」은 겨울 덕장에서 탄생하는 황태의 건조과정을 삶의 은유로 풀어낸 음식 시의 백미다. 시는 단순히 미각의 감상을 넘어, 존재의 숙성과 회한을 담은 서정적 대서사로 확장된다.
첫 연의 “눈발 속 떠밀려 / 덕장 끝에 매달린 바람”은 자연의 시련을 그대로 견뎌낸 황태의 모습에서 ‘삶의 풍상’을 읽어내게 하며, “속살에 겨울이 스며들었다”는 표현은 단지 시간의 흔적이 아닌 ‘내면화된 고통과 인내’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황태는 여기서 더 이상 생선이 아니다. 그것은 곧 한 인간이 되며, 시인은 그것을 ‘속을 여는’ 존재로 변화시킨다.
중반부 “아버지의 두툼한 손등 같고 / 어머니의 구들장 같다”는 대목은 이 시의 정서를 가장 농밀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황태의 맛은 가정의 온기, 부모의 체온, 잃어버린 시간의 감촉으로 직조되며, 시는 음식이 가진 궁극의 위로로 독자를 이끈다. 특히 “한 모금 막걸리처럼 / 묵은 눈물이 고인다”는 구절은 정서를 폭발시켜, 이 시가 ‘입속의 음식’을 넘어서 ‘가슴속의 기억’으로 귀결됨을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한 생의 풍상을 견뎌낸 / 노인의 이야기처럼”이라는 문장은 시 전체의 주제를 정리한다. 황태는 단순히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와 시간, 연륜과 사랑이 불빛 속에서 부드럽게 다시 태어나는 상징이다. 음식을 넘어서는 이 서정적 구조는 윤동주적 시학과도 상통하며, ‘견딘 자만이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깊은 감성을 품는다.
「황태구이 — 겨울의 불빛」은 그리움이 있는 이들에게는 부모의 잔상으로, 이방인들에게는 겨울을 견디는 위안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단지 한국 음식의 시적 형상화가 아니라, 보편적 인간 경험을 불빛처럼 따뜻하게 비추는 시적 행위다. 음식 한 점에 인생을 녹여낸 이 시는, 서정의 본질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정갈하게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