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윤동주, 박성진, 각각의 고향의 향수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향수, 또 다른 고향, 세 번째 고향


박성진 칼럼니스트 -각색



1. 정지용 「향수」

정지용 향수,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 박성진의

세 번째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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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지용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지리적 고향의 심상, 실존의 근원으로서의 공간, 토속성과 그리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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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동주 「또 다른 고향」


>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디 내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적이 있었으랴.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시간을 초월한 내면의 귀향, 존재의 윤리적 심판, 자아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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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성진 「세 번째 고향」 (창작시)


> 두 시인의 그림자가 마루 끝에 앉아 / 서로 다른 고향을 말하더이다.

한 사람은 소와 들녘, 외나무다리 너머 엄마의 숨결을 읊조리고 /

다른 이는 가슴팍 속 뼈마디로 귀향을 묻습니다.


나는 그 둘 사이, 세 번째 고향을 꿈꾸었습니다. /

분단과 전쟁의 뒤안길, 역사의 숨비소리 들리는 곳.

정지용의 강가와 윤동주의 별빛 사이 /

아직 도착하지 못한 조국이 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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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평론: “향수와 귀향, 두 시인의 시학에 대하여”


정지용의 「향수」는 자연과 토속, 풍경과 감정이 일체 된 지리적 고향의 원형적 시학을 드러냅니다. 실개천, 얼룩빼기 황소, 외할머니의 안마당 — 이 모든 시어는 ‘한국적 감성의 무의식’으로 귀결됩니다. 향수란 말 그대로 ‘그리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고향과 자아의 통일된 장소’입니다.


반면, 윤동주의 「또 다른 고향」은 시간의 비극을 견뎌낸 내면의 귀향 시입니다. 그의 고향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죄와 고통, 회한과 반성의 총체로서 죽음을 지나 다시 나에게 도달하는 윤리적 공간입니다. 정지용이 외부로부터 내부로 돌아간다면, 윤동주는 내부에서 내부로 더 깊이 파고듭니다.


이 두 시의 시적 자장을 연결하여 박성진 시인은 「세 번째 고향」이라는 시대적 귀향의 시학을 형성합니다. 여기서 ‘세 번째 고향’은 분단된 조국이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동체의 미래입니다. 이 시는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어를 절묘하게 연결하되, 거기에 박성진 시인 고유의 분단문학적 시각과 통일에 대한 미학적 응답이 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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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글:


정지용은 눈을 감고 그리운 고향을 보았고, 윤동주는 눈을 감고 잃어버린 나를 보았다. 박성진은 눈을 감고, 그들 사이에서 아직 오지 않은 조국을 본다. 그것이 세 번째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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