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비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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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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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유랑자 박성진
북녘의 설산 아래
나는 백 년을 숨죽이며
전쟁도, 사랑도 모른 채
녹색의 맥박을 품었다
너희는 내 이름을
비취라 부르지만
나는 한 번도 나를
부른 적 없었다
해방을 향한 바람이 불던 날
작은 돌멩이 하나
총칼 아래 부서져
내 어깨에 눕더라
그때 알았지
나 또한 나라의 딸이라는 걸
눈물은 광물이 될 수 없지만
눈물만이 진짜 빛을 낸다고
나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분단의 밤을 뚫고
땅속 깊은 숨결로
남녘에 묻힌 그대에게
“형제여,
우린 아직 하나다
무너진 지층 위에
희망을 심자”
비취는 말이 없지만
빛으로 말한다
조용히 반짝이며
편지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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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비취의 편지』는 한반도의 북녘 지층 깊숙이 존재하는 ‘비취’ 광물의 의인화된 시적 독백입니다. 이 비취는 정치적·지리적 분단으로 인해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존재로 남겨졌으나, 시간이 흐르며 분단의 상처를 함께 견디는 증인의 입장이 됩니다. 시인은 “눈물은 광물이 될 수 없지만 / 눈물만이 진짜 빛을 낸다”는 구절을 통해, 감정과 광물의 물성을 넘나드는 시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비취는 단지 아름다운 보석이 아니라, ‘분단의 시간을 기억하는 생명체’로 그려집니다. 이 편지는 비취가 써 내려간 것이지만, 실은 박성진 시인이 윤동주 시인의 시혼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통일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써내려 가고 있다는 은유적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