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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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 흰 벽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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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시인
바다는 그날의 슬픔을 닮았다
포르투갈 돛단배가 지중해를 할퀼 때
카사블랑카의 흰 벽은
아직 울음을 몰랐다
스페인의 그림자가 지고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네던 시장
민트 차 향이 떠오르면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그네였다
하산 2세 사원 앞에서
바람은 콜로니얼의 먼지를 털고
아틀라스 산맥 너머
한 조각 달빛이 바르샤 문에 기대었다
사랑은 이 도시의 다른 이름
기차역 플랫폼에 남겨진 입맞춤
흑백 영화의 필름처럼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 한 장
나는 다시 길을 묻는다
모로코의 붉은 모래가
눈물처럼 신발 속에 고이면
이방인의 마음에도 고향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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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역사와 문화의 교차로, 카사블랑카
1연:
포르투갈이 카사블랑카 항구를 탐사하고 지중해 진출을 본격화하던 15세기 무렵을 상기시키며, ‘흰 벽’은 도시 이름 Casa Blanca(스페인어로 '하얀 집')의 기원을 암시합니다.
2연:
스페인의 통치 이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사블랑카는 지금도 불어와 아랍어, 베르베르 문화가 공존합니다. 이국적 시장(수크)과 민트 차는 모로코의 대표적 문화 정서입니다.
3연: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하산 2세 모스크, 고대의 바르샤 문, 바람 속에 쌓인 제국주의의 흔적을 통해 콜로니얼 문화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교차합니다.
4연:
영화 『카사블랑카』(1942)의 명장면인 기차역의 이별 장면을 인용하며, 사랑과 이별, 떠남과 남겨짐의 보편적 감성을 녹였습니다.
5연:
마지막은 떠도는 자의 마음이 낯선 도시에서조차 기억의 고향을 발견하는 순간을 표현합니다. 모로코의 붉은 사막 모래는 그 자체로 역사의 잔류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