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물비늘 아래 묻힌 이름



〈거문도, 물비늘 아래 묻힌 이름〉


박성진 시인


먼바다 푸른 살결

달빛보다 먼저 와서

검은 섬을 쓰다듬네.


망망한 시간 속에

어느 날 영국 군함

닻을 내렸지 그 대륙.


해풍은 묻지 않네

누가 이 섬을 지켰는가

돌무덤만 잠잠하다.


물비늘 아래 잠긴

이름도 노을도 없이

거문도는 흐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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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해설


이 시는 박성진 시인의 시적 감각으로 거문도의 역사와 정서를 사유의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첫 연은 ‘달빛보다 먼저 와서’라는 시어를 통해, 태고의 자연으로부터 내려온 거문도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달보다 먼저 도착한 바다는 시간 이전의 기억, 또는 신성함을 상징한다.


둘째 연은 1885년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언급한다. ‘그 대륙’은 외세를 은유하면서, 그 침입이 조용한 섬에 내린 닻처럼 깊은 상처로 남았음을 암시한다.


셋째 연은 누구도 그 상처를 묻지 않는 현재를 말한다. ‘돌무덤’은 잊힌 이들과 조용한 저항을 의미하며, 민중의 고독한 역사적 증언을 담고 있다.


마지막 연은 ‘물비늘 아래 잠긴’이라는 은유를 통해, 역사는 기록되지 않아도 바다 아래 흐르며 존재함을 암시한다. 이름도, 노을도 사라졌지만 섬은 스스로를 견디며 흘러간다.


이 작품은 단지 섬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풍경으로서의 섬'을 새롭게 부각하는 시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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