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윤동주 시인과 박성진 시인의 시적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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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슨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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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 박성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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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과 박성진의 시적 대화
1. 윤동주
(바람결에 서성이다)
저 문 너머
내 청춘의 그림자 걸어두고 떠났습니다.
별 하나,
하늘 하나,
지켜주지 못한 조국의 이름 아래
나는 부끄러워 시를 썼습니다.
2. 박성진
(묵은 창틀 앞에서 무릎 꿇으며)
선생님,
그 부끄러움이 제 생의 등불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분단된 이 땅의 별들을 세고,
하나 된 시를 쓰는 일에
제 전부를 걸어보려 합니다.
3. 윤동주
(고개 끄덕이며)
나의 방에 들어섰다지요.
그곳엔 아직
민들레 홀씨 같은 기도가 남아 있습니까?
나는 들을 수 없지만
당신의 심장은
정말로 이 민족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4. 박성진
(굳게 답하며)
네, 선생님.
그 사랑은 가끔 절 망설이게도 하지만,
더 많이
저를 떨리게 합니다.
무너진 경계 위에서,
시로 말하고, 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5. 윤동주
(하늘을 바라보며)
그럼 나는
이제 안심하겠습니다.
제2의 윤동주라 불리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신이 '오늘'을
정직하게 견디고 있다면
시와 양심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6. 박성진
(작은 별 하나 손바닥에 올리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한 자락 별빛,
제가 이어 쓰겠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다음 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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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 윤동주의 방 앞, ‘시간의 윤리’를 나눈 두 시인의 시적 대화
박성진 시인의 시적 구성물인 《핀슨관 앞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간성과 사상성에 정면으로 응답하며, 한 시대와 다음 시대를 연결하는 ‘시의 윤리적 연대’를 문학적으로 실현한다. 본 시는 단순한 오마주를 넘어서, 윤동주의 육성을 상상된 음성으로 호출하고, 이를 통해 현대의 ‘제2의 윤동주’가 어떤 사명감과 진정성으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한다.
첫 연에서 윤동주는 “지켜주지 못한 조국”과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이는 그의 대표작 「서시」와 「참회록」의 윤리적 핵심을 응축한 표현이며, 죽음을 넘어 남은 자에게 이어지는 도덕적 책임의 서사다. 이에 박성진 시인은 응답하듯 “그 부끄러움이 제 생의 등불이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윤동주의 시학을 단순한 기억이 아닌 ‘살아 있는 실천의 유산’으로 계승하겠다는 선언을 보여준다.
특히 3연과 4연의 대화는 오늘날의 문학과 윤리, 통일과 분단의 현실에 직면한 시인의 자기 고백으로 읽힌다. 윤동주는 “당신의 심장은 정말로 이 민족을 사랑하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박성진은 “사랑은 절 망설이게도 하지만, 떨리게 합니다”라며 진정성의 고백으로 응답한다. 이는 부끄러움의 미학을 감성적 기억이 아닌, 실존적 실천의 결단으로 발전시킨 결과이다.
마지막 5~6연에서 윤동주는 “제2의 윤동주라 불리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하며 ‘이름’보다 ‘살아 있는 시정신’의 전승을 강조한다. 그에 화자는 “다음 장을 쓰겠다”라고 응답하며, 윤동주 시학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짊어진다. 이 시는 결국 ‘시인의 죽음 이후, 시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며, 시를 쓰는 자가 얼마나 그 무게를 인식하고 있는지 묻는 진중한 작품이다.
문학사적 의의로 보아도 이 시는 매우 독창적이다. 윤동주의 기숙사인 핀슨관 앞을 실존적 무대로 설정함으로써, 역사적 시공간과 상상의 시공간을 결합시킨다. 이는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émoire) 개념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사례로, ‘윤동주의 방’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윤리적 공간이자 문학적 성소로 기능함을 잘 보여준다.
총평
《핀슨관 앞에서》는
윤동주의 시를 다시 쓰는 시도가 아니라,
그의 시를 오늘의 시간으로
되살려 쓰는 윤리적 문학의 실천이다.
이 시를 쓴 박성진은 단순한 후계자나 연구자를 넘어
‘동시대의 시인’으로서 윤동주와 나란히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