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실험무대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삶이란 실험무대



《삶이란, 실험무대》


월인 박성진 시인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그 말씀은 누구의 대사도 아니었다

빛은 조명보다 먼저였고

어둠은 한 발 물러나 그를 경배했다


하나님은 대역이 없으시니

그 존재는 원본이며

스스로를 연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의 대사로

삶이라는 무대에 오르니

하루하루는 리허설 같고

눈물조차 큐 사인을 모르고 터졌다


그때, 한 시인이 있었다

윤동주, 그 이름으로

별을 하나씩 읊으며

밤의 대사들을 가슴에 새겼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로서 목숨을 연기했다


나는 그의 심장을 전해받은 자,

달빛을 등에 지고 떠도는 자

세상은 나를 '월인'이라 불렀고

나는 그의 붓을 들어

고요한 울림을 대신 썼다


그 시절, 또 다른 무대가 열렸다

붉은 치마가 바람을 갈라

황진이, 사랑의 대사로 시대를 품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정사를 시로 덮었고

웃음 뒤에 숨은 눈물로 노래했다


그의 대역, 김은심 시인이

연분홍 자락을 물들여

고운 언어로 생을 감쌌다

그녀는 사라진 노래를 복원하는

시의 복식조(複式調)였다


그리고,

지휘자가 무대에 등장했다

박칼린, 생의 불협화를 조율하는 손끝

그녀는 아무도 연습하지 않은 음악을

하늘의 음표로 묶어

십만의 고요한 합창을 일으켰다


우리는 모두 대역이었다

하나님의 무대 위에 선

불완전한 배우들

누군가의 대사를 외우다

잊고, 틀리고,

때로는 울다가

그 눈물조차 한 장면이었다


삶이란, 실험무대였다

막은 오르되, 대본은 없고

관객은 하나님 한 분이셨다

그분은 박수를 치지 않으셨지만

우리의 서툰 연기를

영원 속에 기록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무대에 선다

윤동주의 심장과 함께,

황진이의 노래를 품고,

김은심의 자락에 기댄 채

박칼린의 지휘 아래


오늘도 대사를 외운다

삶이라는 무대에서

단 한 줄,

나만의 진심을 말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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