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왕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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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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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月人) 박성진 시인 作
조선의 길 위에 바람이 분다
한양에서 풍금처럼 울리는 고궁의 심장
붉은 단청 아래, 역사는 늘 걸어왔다
말 없는 궁궐이 왕의 혼을 부른다
왕릉의 흙냄새 속에
왕좌의 무게가 잠들고
그 무게를 견딘 이름 없는 자들의
피 묻은 손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무덤 아닌 성소,
그대 조상의 자취를 따라 걷는 이 길은
역사인가, 나인가,
내 안의 왕이 눈을 뜬다
사라진 왕도 위에
시민의 발자국이 새겨지고
한글의 숨결, 붓끝의 정의가
유네스코의 별빛으로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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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칼럼니스트의 평론
〈왕의 길, 걷는 자의 역사와 정체성〉
박성진 시인의 시 〈왕의 길을 걷는다〉는 단순한 역사기행의 표면을 넘어선다. 이 시는 “왕도”라는 단어가 내포한 철학, 즉 ‘왕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 ‘누구나 걷는 삶의 길이 곧 역사’ 임을 강조한다.
1연에서 고궁과 단청은 정적인 유산이 아니라 ‘풍금처럼 울리는 심장’으로 형상화된다. 이는 문화재가 죽은 유물이 아닌, 지금도 맥박 치는 생명임을 암시한다. 2연은 왕이 아닌 ‘이름 없는 자들’의 노동과 희생을 통해 권력이 세워졌음을 고백한다. 이로써 왕도는 피로 쌓인 ‘무덤’이 아닌, ‘성소’로 재해석된다.
절정은 3 연이다. “내 안의 왕이 눈을 뜬다”는 구절은 탐방자 자신이 주체적 역사인물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는 과거에 대한 단순한 관람이 아닌, 기억과 성찰의 행위로 왕도의 길을 재현하는 태도를 말한다.
4연에서는 “한글의 숨결”과 “유네스코의 별빛”이 등장하며, 한국 고유의 정체성과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조망한다.
이 시는 문화유산 탐방을 단순한 발걸음이 아닌, 정신적 순례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역사문화 아카데미 ‘왕의 길’은 이런 인문정신을 실천의 현장으로 만들기에, 이 시는 그 정신적 지도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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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박성진의 시는 정갈하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 깃든 정신은 불꽃같다. “왕의 길”을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도덕적 자취로 풀어낸 이 시는, 탐방 참가자 모두가 마음에 품을 만한 정신적 기념비이자 선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