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조용조용 님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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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조용 님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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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시인 동시
(한용운 「님의 침묵」에서 영감)
님은 말이 없어요
근데 나는 알아요
햇살이 볼을 쓰담쓱,
그게 님이 웃는 거예요
바람이 “후우” 하고
귓가에 장난칠 땐
“잘 지내지?” 하는 인사예요
꽃잎이 팔랑,
나뭇잎이 살랑,
모두모두 님이 보내는 편지예요
말은 없어도
마음은 토실토실
내 가슴이 먼저 “안녕!” 해요
님이 조용하면
내 마음이 방긋방긋
님도 방긋방긋
우리 둘은 말없이도 친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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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침묵의 말, 말 없는 사랑의 시학 ― 월인 박성진의 〈조용조용 님이 와요〉를 읽고』
한용운 「님의 침묵」의 동심적 계승과 해석을 중심으로
1. 침묵에서 다시 태어난 동시
박성진 시인의 동시 《조용조용 님이 와요》는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맑고 순수한 동심의 언어로 번역한 시적 응답이자 해석의 확장이다.
원작이 지닌 침묵의 철학과 절제된 사랑의 미학을
박성진 시인은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이미지로 옮기며,
침묵을 말보다 더 따뜻하게 풀어낸다.
한용운이 “님은 갔습니다”라는 절절한 상실의 감정에서 출발했다면,
박성진은 “님은 말이 없어요, 근데 나는 알아요”라고 말하며,
상실이 아닌 기척과 공감의 시학으로 접근한다.
즉, 부재의 님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 머무는 님,
목소리는 없지만 햇살과 바람, 꽃잎과 나뭇잎을 통해 말 거는 님을
아이의 시선으로 부드럽게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동시는 감각적인 동요를 넘어서
침묵의 정서, 말 없는 교감,
그리고 존재의 기척을 노래하는 시철학으로 확장된다.
2. 침묵은 부재가 아닌 다정함
이 동시에서 가장 중요한 정서는 ‘침묵의 다정함’이다.
시에서 ‘님’은 단지 말이 없을 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바람이 ‘후우’ 하고 귓가에 장난칠 땐 / ‘잘 지내지?’ 하는 인사예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 되는 세계’에 들어선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이 시는 말 없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온기,
그 모든 것을 어린이의 세계에 맞는 속도로
조용히 스며들게 한다.
3. 동심의 시학과 달빛의 언어
박성진 시인의 필명 ‘월인(月人)’은
그의 시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다.
달은 소리 없이 비추고,
밤마다 지구를 돌지만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을 감싼다.
이 동시의 ‘님’도 그러하다.
보이지 않지만 다가오고,
말하지 않지만 전해지고,
침묵 속에서 가장 큰 소리를 전하는 존재다.
박성진 시인의 동시는
윤동주 시인의 정신을 계승한 문학적 세계 안에서
한용운의 철학적 정서까지 포용하며
달빛의 감수성을 아이의 언어로 풀어낸다.
“말은 없어도 / 마음은 토실토실 / 내 가슴이 먼저 ‘안녕!’ 해요”
라는 구절은 말로 소통하지 않아도
진짜 마음이 오가는 순간을
더없이 순하게 보여준다.
4. 한용운과의 대비: 고독의 무게에서 유희의 빛으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상실, 애절함, 절제된 고백으로 대표된다.
그는 부재한 님을 시 속에서 상징화하며
정신적 사랑의 절정을 노래했다.
그러나 박성진은 ‘님’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가볍고, 더 가까이에서,
자연 속에서,
아이 곁에서 숨 쉬는 존재로 다가온다.
이 시에서의 님은
더 이상 눈물 속의 존재가 아닌,
햇살과 바람, 꽃잎으로 장난치는
조용하고 따뜻한 친구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용운의 침묵을,
‘존재의 고통’에서
‘존재의 기쁨’으로 되살려 낸 시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5. 결론 – 말 없는 시, 말 많은 사랑
《조용조용 님이 와요》는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침묵과 말, 존재와 부재, 사랑과 인식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정교한 시적 장치이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이 시는 조용히 말한다.
진짜 마음은, 말없이도 전해진다고.
아이들이 이 시를 읽는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낄 줄 아는 감수성을 기르는 일이며,
말 없는 다정함을 사랑하는
윤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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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말
박성진 시인은
침묵을 말보다 더 정확하게 들려주는
동심의 언어를 가진 시인이다.
그의 이 동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품은 철학을
동화처럼 맑게 풀어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침묵의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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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문학바탕 평론가, 신문예 여행작가, 윤동주 문학 연구자, 분단문학 연구자,)
202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