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대나무야 대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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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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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月人) 박성진 시인 作
대나무야 대나무야
너는 어찌 그리 곧은가
속 비운 채 하늘을 오르고
마디마다 고요히 묵언하네
봄눈에도 휘지 않고
겨울칼에도 부러지지 않는
너의 생은 오로지 한 방향
죽을 때 꽃을 피운다지
천 번의 인고 끝에
한 번의 침묵이 폭발하듯
진리도 그때 피어날까
성철 스님 말하셨지
“대나무처럼 살라”
참선의 뼈마디마다
비움이 깊어지면
한 그루 부처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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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평론
《매난국죽 가운데, 왜 성철은 '대나무'를 택했는가 — 대나무와 불성의 비밀》
박성진 칼럼니스트
불교의 선승이자 한국 정신사의 거봉 성철 스님은 “대나무처럼 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짧은 구절에는 불교의 핵심 수행 원리인 공(空)의 철학과 비움의 수행이 오롯이 담겨 있다.
1. 대나무의 구조: 속이 비어 있으되 무너지지 않음
대나무는 속이 빈 식물이다. 그러나 그 비움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바람을 품고 지나가게 하며, 휘어지되 꺾이지 않게 한다. 이는 선종(禪宗)의 무아(無我) 수행과 다르지 않다. 자신을 비움으로써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경지.
2. 마디: 절제와 단절의 상징
대나무는 일정한 간격마다 마디가 있다. 이는 무분별한 확장을 거부하고 **단속(斷續)**을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낸다. 성철 스님의 “간화선 수행” 역시 망상과 번뇌를 잘라내고 깨어 있는 상태로 머무는 것이었다. 대나무의 마디는 곧 수행자의 매일 같은 참회의 표시다.
3. 죽을 때 꽃 피운다는 역설
대나무는 보통 60~100년을 산 뒤 꽃을 피운다. 하지만 이 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생의 마지막에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운명은 깨달음과 열반의 은유로 읽힌다. 꽃은 외부로 피지만, 그 준비는 내부에서 오래 익는다. 이는 선사의 수행이 오랜 무언의 축적 끝에 폭발하듯 개화하는 것과 같다.
4. 왜 매, 난, 국, 죽 중 ‘죽’인가?
매화는 겨울 끝에 향을 내고, 난초는 고결하며, 국화는 늦가을에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나무는 네 계절 내내 푸르며,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존재를 뚜렷이 남긴다. 이것이 바로 스님의 선택이다. 드러내지 않되 존재하고, 피지 않되 흔들림이 없다. 즉, 무위(無爲)의 존재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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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려면, 대나무의 외형이 아닌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를 읽어야 한다.
비우고, 단속하고, 묵언하다,
마지막 순간에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것.
이것이 대나무의 운명이며,
곧 **성철이 말한 ‘곧은 삶’**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