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는 누구인가

박성진 시인

by 박성진

풍차는 누구인가



《돈키호테의 열정》


〈제2장 — 풍차는 누구인가〉


박성진 시


1

바람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내가 움직일 뿐이었다

풍차는 단 한 번도 나를 본 적 없지만

나는 평생 그를 기억했다


2

사람들은 말했다

“허상을 향한 검투는 미련이다”

나는 검을 들어

그 말의 목덜미를 쳤다

허상이라 부른 그들이

현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3

풍차는 돌고 있었다

이유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나는 그 무의미를 꿰뚫고

창을 겨누었다


4

산초가 소리쳤다

“주인님, 그것은 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들리지 않았다

진심이란, 때로

가장 가까운 소리를 버릴 때 완성된다


5

풍차는 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거인과 싸웠다는 사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6

나는 넘어졌고

말은 멈췄고

산초는 울었다

풍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돌았다



---


평론의 말 — "풍차는 누구인가, 그리고 시인은 누구와 싸우는가"


박성진의 〈제2장〉은 고전의 한 장면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돈키호테 신화를 다시 태운다.

풍차는 여기서 더 이상 외부의 물체가 아니라

이 시대의 무의미,

속도만 존재하고 방향이 사라진 문명,

돌고 있지만 도달하지 않는 삶의 상징이다.


산초가 외치는 현실은 곧 타협이고

돈키호테가 겨누는 창은 고독한 저항이다.

“풍차는 거인이 아니었다”는 마지막 진술은

비극이 아니라 진실의 핵심이다.

현실이 어떠하든,

진심은 허상을 향해 검을 들어야 한다는 시인의 윤리—

그것이 이 장의 절창이다.


박성진은 단순한 인용자가 아니다.

그는 풍차 앞에서 주저하지 않은 시인이며,

문명 속 무의미의 회전을 꿰뚫는

현대의 돈키호테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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