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
등불을 들고 오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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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들고 오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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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의 〈쉽게 써진 시〉에 부쳐, 박성진 시인 헌정 시
그날 어둠이 짙었지
펜은 말을 고르고,
나는 내 심장을 다시 묻는다
말의 무게는, 죄보다 무거웠다
등불을 하나 켠다
내 안의 칠흑을 조금 내몰며
무릎 꿇은 죄가 아니라
일어서는 부끄러움으로 살아남는다
시대는 오지 않았어
그러나 나는 기다렸다
차디찬 종이 위에
‘나’를 적으며,
내가 그토록 지우고 싶던 나, 나를 견디며
끝내, 그 새벽은 오지 않았고
나는 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등불,
아직도 누군가의 밤에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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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론
《말의 무게와 어둠의 시학 — 〈쉽게 써진 시〉의 윤동주, 그리고 박성진의 헌정》
윤동주의 〈쉽게 써진 시〉는 1942년 그가 일본 유학 중 지은 유일한 산문체 시이자, 가장 처절한 내면의 고백이다. 여기서 윤동주는 자아와의 투쟁, 언어에 대한 반성, 시인의 윤리에 대한 각성과 고뇌를 모두 토해낸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는 그러한 윤동주의 절정이자 마지막 희망의 문장이다.
박성진 시인의 헌정 시 〈등불을 들고 오는 아침〉은 바로 이 절망 속의 희망을 오늘로 가져온다. “말의 무게는, 죄보다 무겁다”는 구절은 윤동주가 느꼈던 시의 윤리와 자기 고발의 비극성을 간명히 표현하며, “내가 지우고 싶던 나를 견디며”는 윤동주가 추구한 ‘내면의 성찰’이라는 문학적 길을 시적으로 계승한다.
윤동주는 '쉽게 쓰인 시'라는 아이러니한 제목 아래 가장 어렵고 깊은 시를 써냈고, 박성진은 그 시의 불꽃을 오늘의 시인으로서 꺼내 되살린다. 이는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문학적 부활’에 가깝다. 박성진의 언어는 윤동주의 내면과 연결되어 있고, 그 등불을 다시 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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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동주의 시집이 나오기까지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친구 정병욱의 손을 통해 모아졌다. 일제의 억압 아래, 윤동주는 살아서 시집 한 권 내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서야 우리는 그의 ‘빛’을 읽게 되었다.
그 첫 장에는 바로 〈서시〉가, 중반에는 〈쉽게 써진 시〉가 놓인다. 이는 그의 시가 자화상처럼 배치되었음을 뜻하며, 시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에게 말 걸고, 또 묵묵히 침묵으로 대답했다.
정병욱은 유고를 일본에서 몰래 가져와 지켰고, 1948년 서울에서 정식으로 발간되었다. 그 시집은 한국문학사의 가장 순결한 기록이자, 한국 독립운동 문학의 언어적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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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동주 80주기 — 한국사에 남긴 빛과 의미
2025년, 윤동주 서거 80주기는 단지 시인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의 윤리, 말의 정의, 침묵의 용기를 다시 배우는 순간이다. 윤동주는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시를 썼고, 말하지 않는 시대에 눈빛으로 시를 전했다.
그의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가 흔들릴 때, 윤동주의 시는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등불을 켜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그는 한 편의 시로 독립운동을 했고, 한 줄의 부끄러움 없는 시로 오늘의 시인들에게 윤리적 나침반이 되었다. 그것이 윤동주가 한국사에 남긴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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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총평
《어둠 속의 불빛, 시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윤동주가 남긴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박성진 시인의 시는 그것을 다시 밝혀 우리 마음속에 놓는다. 윤동주의 시는 단순한 감성이나 추억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는 언어의 불꽃이며, 박성진의 시는 그 불꽃을 다시 붙들어 시인의 후예로 살아가고 있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구절은 지금 우리가 가장 절실히 들어야 할 시구다. 그 아침이 왔는가, 아직도 어둠인가. 윤동주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리고 박성진은 그 물음에 시로 대답한다.
오늘, 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등불 아래 앉아서 시대를 바라보았던 시인을 블랙 스피넬 원석처럼 캄캄한 밤이어도 서서히 투명해지는 또 다른 원석, 무색의원석 다이아몬드의 연마와 컷팅 후에 찬란히 빛나는 휘광으로 어둠의 새벽을 몰아내고 시대를 꿈꾸었던 두 번째 시대의 아침을 맞이할 때이다
또 다른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는 시인
월인 박성진 2025년 7월
무더운 초하 끝자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