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맑은 수정 -별을 헤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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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혼 --- 별을 헤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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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 박성진 시인
오늘은 조용히
분단의 언저리에 서서
작은 별 하나를 올려다봅니다
그 별이
누군가의 이름이라면
그리움도, 기다림도
빛이 되어 떠다니겠지요
철조망 너머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손 내밀 틈도 없이
서로를 잊어간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 한 줄을 꺼내어
작은 마음에 불을 붙입니다
그 불은 크지 않지만
아직 꺼지지 않았죠
진실을 믿는 마음은
강물처럼, 별빛처럼 흐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씁니다
누구를 향해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건네는 듯이
이 시는 내 것이 아닙니다
이름조차 몰랐던
낯선 이들을 향한
작은 인사의 몸짓일 뿐입니다
윤동주의 별빛을 따라
나는 내 안의 등불 하나를 켭니다
별 하나,
시 하나,
그리고 작은 촛불 하나
살아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부끄러움마저 사랑할 수 있도록
나는 흔들리되
쉽게 꺼지지 않는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하늘은 여전히 높고
별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별빛 따라
평화가 걸어오기를,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기를
시처럼,
사랑처럼,
별처럼,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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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윤동주의 시혼(詩魂), 박성진의 통일 감성에 깃들다”
이 시는 다정한 어조를 띠고 있으나, 그 본질은 심오하고 응축된 역사적 아픔을 기반으로 한다. 박성진 시인은 남북 분단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비판적 분노’ 대신, ‘정서적 회복’과 ‘시적 애도’의 길을 택한다. 이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갖고 있는 미학적 구조, 곧 **'조용한 비애를 통한 시대 고발'**과 완벽히 맞닿는다.
1 연부터 3연까지 시인은 “분단의 언저리”라는 공간을 설정하고, 밤하늘에 떠 있는 작은 별 하나를 통해 **‘잊힌 존재들’**을 소환한다. 별은 상징적으로 윤동주 시에서 ‘사람’, ‘이름’, ‘존엄’ 등을 의미했듯이, 이 시에서는 **‘철조망 너머 이름조차 잃어버린 이들’**의 은유로 기능한다.
이는 직접적인 서술 없이도 독자에게 시대의 윤리적 결핍을 조용히 묻는다.
중반부로 들어서며 시는 “윤동주의 시 한 줄을 꺼내어 / 내 안에 조용히 불을 붙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전환점을 맞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윤동주의 시혼(詩魂)을 현대 시인이 계승하는 의식의 장면이다.
그 불은 크지 않지만, ‘아직 꺼지지 않았죠’라는 구절은 박성진 시인의 내면에서 꺼지지 않는 시적 양심과 통일의 불꽃을 상징한다.
박성진 시인의 시는 여기서 ‘시’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위치시킨다. 시란, “누군가를 위해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 조용히 마음을 건네는 듯한” 존재. 이는 현대 정치가 도달하지 못하는 위로의 언어로서, 시가 수행하는 윤리적 책임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정의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별 하나, 시 하나, 그리고 작은 촛불 하나”라는 삼단 구조로 시인의 기도의 형상을 보여준다.
“살아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도록 / 부끄러움마저 사랑할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은 윤동주의 「서시」와 일맥상통하며, **‘부끄러움을 내면화하여 인간 존재의 윤리를 회복하려는 시인의 자기 고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시처럼, 사랑처럼, 별처럼, 빛나라”는 이 시의 모든 기도가 도달하는 미학적 종착점이다.
‘빛나라’라는 단어는 단지 아름다운 수사가 아니라, 박성진 시인 자신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시 그 자체가 ‘등불’이 되기를 자처한 선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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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수정의 혼 — 별을 헤며 쓰는 편지》는 단지 분단 현실을 고발하거나, 통일의 이상을 외치는 시가 아니다. 이 시는 **“조용히, 그러나 끝내 꺼지지 않는 시인의 신념”**에 대한 헌사이자, 윤동주 이후 한국 시인이 계승해야 할 윤리적 미학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박성진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
타인의 슬픔에 대한 민감함,
시를 통한 치유의 가능성,
통일문학의 감성적 전환을 동시에 성취하고 있다.
분단을 소재로 삼되 비통에 머무르지 않고,
평화를 말하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으며,
윤동주를 인용하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시정신으로 이어가는 이 시는
박성진 시인이 만들어가는 **‘21세기 윤동주적 시정신’**의 또 하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단언컨대
분단문학의 침묵을 깨우는 수정 같은 목소리이며,
한 시인이 별빛 아래서 기도하는 시대의 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