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 민족의 끈》

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by 박성진

어부바



《어부바 — 민족의 끈》


월인지명 박성진 시


어머니의 등에서

나는 처음 하늘을 보았다

좁디좁은 골목 하늘 위로

흰 구름은 흘렀고

저 멀리 산새가 울었다


어부바, 하고 매달린 나를

어머니는 한 번도 떨쳐내지 않았다

굽은 등 위로 쏟아지던

햇살과 빗방울,

그 모든 것은 한국 근대사의 무게였다


수탈의 논두렁에서

빼앗긴 쌀처럼 허기진 민족의 저녁,

어머니의 손목에 감긴 헝겊끈은

끊어질 듯 이어진 민족의 끈이었다


바람 불어오면

등 위의 아이를 감싸 쥐고

어머니는 허리를 더 숙였다

그 자세로 나라를 지켰다

그 자세로 겨울을 견뎠다


어부바, 그 등에서

나는 눈물이 무엇인지 배웠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부끄러움일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새겼다


어머니가 흘린 땀과 젖은 옷자락,

그 속에서 우리의 민족혼은 자랐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곧

조선의 숨소리였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오늘도 기억한다

쌀집의 문간에서, 논둑의 길모퉁이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목소리,

어부바—

민족의 끈은 그렇게 이어졌다.



---


평론: 《어부바》의 진실을 밝히다


박성진 시인·문학평론


1. 민족사의 등으로서의 ‘어부바’

이 시의 핵심 상징은 ‘어부바’이다. 전통적으로 ‘어부바’는 유년기의 보호와 사랑을 상징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가족적 정서를 넘어 민족사의 등으로 확장된다. 굽은 어머니의 등은 식민지와 전쟁, 가난과 노동으로 굽은 한민족의 시대적 척추를 연상케 한다. 아이가 어부바를 하며 바라본 좁은 하늘은, 근대사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도 작게나마 존재했던 희망과 자유의 시야다.



2. 사랑의 끈, 민족의 끈

시 속 ‘헝겊끈’은 단순한 육아의 도구가 아니라 끊어질 듯 이어진 민족의 끈을 은유한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도 한민족은 모성의 힘으로 생존을 이어왔다. 시적 화자는 뒤늦게 깨닫는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곧 조선의 숨소리였음을” — 이는 곧 모성의 사랑이 민족혼과 맞닿아 있음을 선언한 대목이다.



3. 어부바의 진실 — 생존과 부끄러움

이 시는 단순한 향수의 시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쩌면 부끄러움일 수 있다”라는 구절은 근대사의 진실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살아남은 세대는, 민족적 수난을 직접 짊어진 세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어부바는 보호와 사랑의 기억일 뿐만 아니라, 민족 생존의 부끄러운 기억이기도 하다.



4. 역사적 서정의 완성

《어부바 — 민족의 끈》은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모성 서정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신경림의 농민 서정, 김수영의 시대적 양심과도 맥락이 닿지만, 더 개인적이면서도 역사를 가슴으로 짊어진 서정시라는 점에서 독자적이다.




결국 어부바의 진실은 **“한민족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살아남았다”**라는 역사적 자각이며,

그 끈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시는 조용히 증언한다.

작가의 이전글《카인의 후예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