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탄피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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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피를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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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지명 박성진 시인
모래바람 부는 골목마다
떠난 이들의 이름 대신
녹슨 탄피만 누워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주워
조용히 씻었다
손바닥에 남은 금속의 차가움이
심장의 맥박을 멈추게 했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의 웃음과 발자국은
먼지 속 메아리로만 남았다
탄피를 모아
나는 하늘을 향해 비둘기를 만들었다
부서진 날개에도
흰 깃털의 꿈을 달아 주었다
언젠가 이 비둘기가
전쟁터의 하늘을 넘어 날아가
총구의 눈을 감기고
집을 잃은 아이의 손을 잡아 주길,
밤마다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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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평론 – 전쟁의 잔해에서 태어난 평화의 조형 시
박성진 시인의 〈탄피를 모아〉는 한 편의 시이자, 하나의 예술적 조형물이다. 이 시는 분쟁과 전쟁의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라는 물질적 흔적을, 기억·애도·희망으로 변환하는 시적 제의(祭儀)로 기능한다. 첫 연에서 시인은 “모래바람 부는 골목”과 “녹슨 탄피”를 병치하며, 사라진 사람들의 부재와 차가운 금속의 냉혹함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이는 전쟁 문학이 흔히 보여주는 폭력적 현장묘사 대신,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상실의 윤리를 택한 것이다.
둘째 연에서 시적 화자는 탄피를 “하나씩 주워 / 조용히 씻었다”라고 말한다. 이 행위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시키는 의식과 같다. 전쟁의 잔해를 씻는 행위는 곧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부드럽게 불러내는 장례이며, 동시에 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문학의 윤리적 역할을 드러낸다. 손바닥의 금속성 차가움이 심장을 멎게 하는 장면은, 읽는 이에게도 차갑고 무거운 현실감을 남긴다.
셋째 연에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의 웃음과 발자국은 “먼지 속 메아리”로 남는다. 이 대목은 시 전체의 정조(情調)를 결정하는 회한의 순간이다. 시인은 떠난 이들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그 부재만을 강조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그 얼굴과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전쟁 문학에서 침묵은 가장 큰 증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 두 연에서 시는 조형적 상징으로 비약한다. 시인은 “탄피를 모아 비둘기”를 만든다. 여기서 탄피는 더 이상 죽음의 잔해가 아니라, 평화와 희망으로 변환되는 예술적 매개체가 된다. “부서진 날개”와 “흰 깃털의 꿈”의 대비는, 현실과 이상, 상처와 구원의 긴장을 담아내며 시적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종연부에서 시인은 자신의 소망을 기도로 변환한다. “총구의 눈을 감기고 / 집을 잃은 아이의 손을 잡아 주길”이라는 구절은, 문학이 마지막으로 도달할 수 있는 윤리적 위로를 상징한다.
종합하면, 〈탄피를 모아〉는 전쟁의 잔해로 만든 문학적 기념비다. 박성진 시인은 폭력과 절망을 응시하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평화를 향한 날개를 세운다. 이 작품은 시를 넘어선 하나의 **예술적 기도이자 세계시(世界詩)**이며, 오늘날 전쟁과 분쟁의 지구촌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의 형식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