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시인 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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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시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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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떤 날은 시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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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시인
처음 가보는 고창 보리밭
가운데 길 가를 두고 보리밭, 유채꽃들이 다툰다
넓은 보리밭은 처음이다
숨을 넓게 쉬며 길게 걷는다
파란 보리밭이 나를 감쌌다
누군가의 詩 발에 들어온 것 같다
벅찬 마음 막상 메모를 하려고 하니
詩어들만 앞서가며 자기 자리인 듯 앉는다
내 마음이 안 보인다
마음에 안 든다
그냥 생각을 놓아야겠다
보리밭을 떠난다
떠다니는 구름 따라
하늘에 갈겨쓴 나의 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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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강지원 시인의 「어떤 날은 시 같은 날」은 자연 체험과 시적 성찰이 맞물린 작품이다.
고창 보리밭이라는 실제적 배경을 통해 화자는 ‘낯선 자연’과 ‘시적 감흥’을 동시에 경험한다. 첫 행에서 “처음 가보는 고창 보리밭”이라고 밝히며 시작되는 이 시는, 독자를 곧장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이 작품은 크게 네 단계로 읽힌다.
1. 감탄과 몰입
“넓은 보리밭은 처음이다 / 숨을 넓게 쉬며 길게 걷는다”에서 시인은 감각적 몰입을 경험한다. 시각, 후각, 호흡까지 동원된 생생한 자연 체험이 중심이다.
2. 자연과 시의 합일
“파란 보리밭이 나를 감쌌다 / 누군가의 詩 발에 들어온 것 같다”라는 대목에서 화자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시 자체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3. 시적 무력감과 자기 성찰
“詩어들만 앞서가며 자기 자리인 듯 앉는다”라는 표현은, 시를 붙잡으려는 시인의 욕망과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자연-시의 독립성을 보여준다. 시를 쓴다는 행위가 곧 겸허한 사유임을 환기한다.
4. 비움과 초월
마지막 연 “떠다니는 구름 따라 / 하늘에 갈겨쓴 나의 詩들”은 집착을 내려놓은 순간에 시적 초월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이는 동양적 비움의 미학과 현대 서정의 감수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형식은 자유시지만, 단락마다 3~4행씩 배치되어 있어 서정적 호흡이 안정적이다. 시 전반에 걸쳐 **시각적 이미지(보리밭, 유채꽃, 구름)**와 **정신적 이미지(시, 비움, 하늘)**가 교차하며, 독자는 자연을 매개로 한 시적 자기 발견의 과정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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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이 시는 **‘시를 쓰려는 순간, 이미 시는 자연 속에 존재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연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끝내 구름과 함께 하늘에 시를 남기며 초월한다.
문학바탕과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정회원으로서 강지원 시인은 일상의 자연을 시적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주며, 현대 한국 서정시의 맥락에서도 주목할 만한 겸허한 시심(詩心)을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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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시인 프로필]
국제문학바탕문인협회 정회원
민용태 교수 아카데미 수료
시집 《굴뚝 연기가 그립다》
문학바탕 동인지 《시와 에세이》 16, 17, 18호 참여 (총 3권)